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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Apr 22. 2023

자기와 자기가 하는 일을 동일시한 사람, 그는 죽음과도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자기와 자기가 하는 일을 동일시한 사람, 그는 죽음과도 동일시할 줄 안다 

광적이면 창의적이다. 2002년 개봉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에서 주인공 나인틴 헌드레드는 광적이어서 창의적인 사람이다. 그는 유럽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고 미국으로 떠나는 거대 여객선 버지니아호 안에서 태어나 버려졌다. 부모가 배에 버리고 간 아기를 발견한 한 흑인이 그를 자식으로 키웠다. 그는 배 안에서 독학으로 피아노 연주자가 됐다. 


긴 항해에 지친 승객들은 그의 광적이고 창의적인 피아노 연주에 열광했고 위로받았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마다 그의 회중과 하나가 됐다. 산더미 같은 파도에 배가 흔들려 바퀴 달린 피아노가 연주장을 로봇 청소기처럼 헤집고 다닐 때, 그의 연주는 더 흥이 났다. 배 밖이라고는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그는 이 기쁨에 그의 삶 전부를 걸었다. 

 

그는 배를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유일한 세계인 버지니아호가 수명을 다해 바다 위에서 폭파하기 위한 다이너마이트 설치작업이 시작됐다. 그의 유일한 친구인 트럼펫 연주자는 그에게 도시로 나가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라고 했다. 당신이라면 가능하고 그것은 당신 삶을 빛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배에 남아있기로 작정했다. 구석구석 다이너마이트가 설치된 황량한 빈 배에 혼자 남아 혼자 무도회 곡을 작곡했고 연주했다. 그리고 다이너마이트의 굉음과, 산산조각이 난 배의 파편들과 함께 바다에서 태어난 그는 바다로 돌아갔다. 


“배 안에는 끝이 있는데 도시에는 끝이 없다.” 그가 배에 남아 죽음을 선택한 이유이다. 도시로 나가면 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고 그의 연주는 레코드판에 녹음돼 그가 없는 곳에서도 연주될 것이다. 그는 이름을 날릴 것이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결혼할 것이고, 많은 돈을 벌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없는 곳에서 나의 피아노가 연주된다는 것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피아노 연주자가 아니라 피아노 연주의 생산자가 될 것이다. 그는 자기와 자기가 하는 일을 동일시했다. 진정한 예술가는 광적이어서 삶이 녹록하지 않다. 


그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되고 싶었다. 그런 그가 배 안에 남아 죽음을 선택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영화는 자신과 자신이 하는 일을 분리하여 불행해진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꿔 미국으로 향하는 유럽인들은 자기와 자기가 하는 일을 동일시하지 못한다. 즉 그들이 노력하여 성취한 것과 자기가 분리돼 있다. 더 큰 성취는 더 큰 인간소외 현상이 뒤따랐다. 


그가 말했다. “배 안의 피아노 건반 88개는 끝이 있으나, 도시의 피아노 건반 88개는 끝이 없다.” 그가 없는 곳에서도 그의 연주가 들린다면, 그때부터 그가 아닌 레코드판이 연주할 것이다. 그에게 배를 떠나 명성을 떨치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이다. 그렇게 사느니, 그는 배 안에 설치된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음과 함께 바다로 사라지기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내가 삶의 주체가 될 것이냐, 삶이 나의 주체가 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자기와 삶이 분리된 사람은 삶의 일부인 죽음과도 자기를 분리한다. 그에게 죽음은 삶의 연장선이 아닌 존재가 해체되는 두려운 어떤 것이다. 그가 삶을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죽음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이 주는 교훈에 귀를 기울이자. 우리는 어떻게 자신이 하는 일에 투신할 수 있을까? 



마음 순례 박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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