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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Apr 25. 2023

죽음 직후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퀴블러로스의  "사후생"   영화 "사랑과 영혼"

죽음 직후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진다면, 못 밝혀낼 일은 아니다. 죽음 이후에 깊은 차원은 영적인 영역이어서, 3차원에 갇힌 자아로서는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아, 그 부분도 관심만 가진다면 믿을만한 문헌이 수두룩하지만 과학적 차원을 넘는다. 그러나 죽음 직후의 상태에 대해서는 근사체험자들에 의하여 진술되고 있다.

 

근사체험자들을 인터뷰해서 쓴 퀴블러로스의 저서 “사후생”에 의하면, 죽음 직후에는 공중에 붕 떠서 병상에 누워있는 나, 그리고 그 주변에서 슬피 우는 가족들을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하면서 의아하게 내려다본다는 것이다. 아직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의 감정이 아직은 남아있고, 마음만 먹으면 벽을 통과하는 것은 물론,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이동한다고 한다. 이것이 죽음이라면 다시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평화롭다고 한다. 

 

죽음 직후에는 살아있을 때 그가 경험했거나 무의식에 흔적으로 있던 것들을 사후세계에 그대로 투사한다고 한다. 아주 짧은 순간 자신의 전 생애를 리뷰하는 경험도 하는데, 이는 심판이나 형벌이 목적이 아니라 살아온 삶을 “인생 공부”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그가 어떤 정신적 수준으로 살아왔는지, 그것은 숨길 수 없고 파동이 비슷한 영혼들끼리 군집을 이룬다고 한다. 그러나 근사체험자들은 여기까지 이르기 직전에 다시 깨어난다. 어떤 근사체험자는 강을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와 깨어나기도 한다. 

 

그들의 경험으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첫째, 근사를 체험하고 다시 삶으로 돌아와 그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죽음 직후에도 “자아”는 기능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자 융의 진술대로, 자아는 우리가 흔히 무의식이라 하는 곳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자아의 기능으로 과학적 세계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심령현상도 일어나는 것이다. 이부분은 융이 동시성의 원리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둘째, 죽음 이후의 삶은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는 진술이다. 그러나 죽은 자 중에는 남겨 두고 온 가족이나 재산 등의 이유로 삶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죽음의 더 깊은 단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구신이 된다는 무속의 설이 있다. 영매의 역할은 죽은 자는 죽은 자의 세계로 돌려보내고, 산자는 죽은 자를 잊고 삶에 충실하도록 돕는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러한 견해가 회자 되는 것은 사람이 잠깐 있다 없어질 삶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를 보여준다. 

 

1990년 개봉한 영화 “사랑과 영혼”은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죽음 영화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연인 몰리를 떠난 샘은 천국으로 향하지 못하고 공중에 떠돌며 그녀 곁을 맴돈다. 하지만 육체가 없는 샘의 존재를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영화는 상업성으로 돈을 벌어야 하기에 산 자와 죽은 자의 애정을 다루어 흥미를 돋웠지만, 산 자와 죽은 자는 다른 세계관이 있다는 것은 넌지시 제시한다. 우리가 죽음을 이해하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살아있는 자의 입장에서 죽음을 이해하려 하기때문이다. 우리의 자아는 한 없이 깊고 넓은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죽음은 두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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