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35년 동안 알고 지내던 분이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분은 최근 15개월 동안 말기 폐암과 투병 중이었고 그 와중에 나와 몇 차례 전화 통화도 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통증관리를 위해서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고를 몇 차례 반복했다는데, 직접 사인은 다른 합병증이었다. 나와는 일 년에 한두 차례 긴 통화를 하는 사이였고, 서로 얼굴을 잊을 만하면 내가 가서 뵙는 기회가 생기곤 했다.
그분이 곁에 가족도 없이 홀로 암 통증과 마지막 사투했을 것을 나는 생각하면서, 세상에 홀로 태어난 사람은 떠날 때 몸의 통증도 홀로 지고 가야만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분은 외로우셨으나,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신 분이다. 최근 삼사 년 전, 몸과 마음의 기력이 많이 쇠해지자 낮고 고단한 목소리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하시곤 했다. “이제 더 살아야 뭐해. 하나님께서 빨리 데려가면 좋겠어.” 평소 편하게 말을 주고받던 나는 그분의 마음을 좀 알아 이렇게 응수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정해진 인생 공부 다 시키시면 더 살고 싶다고 해도 데려갑니다. 나중에 더 살고 싶단 말씀이나 하지 마세요.”
그분이 폐암 진단을 받기 3개월 전쯤 나와 통화 중에, 죽더라고 아무에게도 말하기 싫고 조용히 떠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이 진실임을 알았고, 그럼 내가 장례식을 조용히 집례해 드린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함께 웃었고 그분은 그렇다면 좋다고 말씀하셨다. 이분이 가실 때가 됐나? 내심, 나는 이 말을 마음에 두었다. 죽음에 매우 관심이 높은 나는 이분은 다른 누구보다도 죽음을 저항하지 않고 편안히 받아들일 분으로 생각했다. 내 생각은 사실이었다.
가족에게 들은 말이다. 그분은 주치의에게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고 종종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주치의가 그럼 이 모든 치료를 중단할까요? 하고 물으면 그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단다. 주치의는 이분의 생명 연수를 길어야 6개월이라 했다. 그런데 기적과 같이 일 년을 넘기셨다. 주치의에 의하면, 이런 경우 다른 환자들은 삶에 의욕을 보이고 치료에 더 전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분은 아니었다고 한다.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하시면서도, 최소한의 의학적 치료는 거부하지 않지 않고, 경과가 조금 좋아지는 징후가 보여도 기뻐하지 않는 것에 주치의는 의아해했다는 것이다.
평소 죽음을 준비한 소수의 사람과, 할 수 있는 한 삶에 집착하는 다수 사람의 차이를 주치의는 몰랐을 것이다. 최소한 의료 치료를 받음으로 자기의 신체에 대한 예를 다 했고, 혹시 가족이 지게 될 부담도 면해준 것이다. 또한 더는 삶을 연장하고 싶지 않은 자신이 신앙도 지킨 셈이다. 죽어가는 자신을 지켜나가는 서로 다른 두 모습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시신은 대학 병원에 기증했다. 자신의 유골이 좁은 단지에 담겨 답답한 봉안당에 갇히는 것을 원하지 않아 병원 측에서 시행하는 수목장에 의뢰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과 유가족분들께 위로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