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순례 May 17. 2023

편안히 죽어가게 하라

죽음의 심리학

떠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는 췌장암 말기로 병원에서 통증관리를 하면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살아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그가 입원해 있는 1인용 병실을 찾아갔다.


의사는 환자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환자의 엄마는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며느리는 만삭으로 한 달 후면 출산한다. 이것은 질서가 잘못된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엄마는 아들이 지금 사탄과 영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고, 죽음은 이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아들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면 기적과 같이 살아나는 것은 신의 뜻이라 확신했다.

 

내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마는 영적 전투에 조력자가 되기 위하여 땀을 흘리며 몇 시간째 의식도 없는 아들을 붙들고 소리 내어 기도하느라 지쳐 있었다. 엄마는 나의 손을 붙들고 나에게 영적 전투의 지원자가 돼 달라고 했다.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든 아들 손을 붙들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기도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아들도 삶의 의욕을 가지고 깊은 잠에서 깨어날 것이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기도는 그의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과, 가족들이 평안히 그를 보내드리는 일이었다.

 

편안히 떠나게 해주세요

나는 환자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내가 하고 싶은 기도를 하면 환자의 엄마가 실망할 것이고, 환자의 엄마가 원하는 기도는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 어울리는 기도도 아니다. 나는 그의 손을 붙잡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기도했다. 그의 엄마는 내 목소리가 작아서 내 기도를 못 들었다. 나는 일찍 세상을 떠나는 환자와 그리고 일찍 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엄마와 감정이입만 하는 기도를 아주 작은 소리로 했다.

 

기도를 마친 후에 내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엄마는 내 눈물을 보고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환자의 손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환자가 내 손을 가볍게 쥐는 것을 느꼈다. 내 눈물방울이 환자의 손에 떨어졌다. 환자의 얼굴이 매우 평온해 보였다. 환자의 손에서 작은 경련이 일어났는데, 나는 그 경련을 이렇게 들었다. “저 먼저 갑니다. 뒤에 오세요.” 이래서 사람이 죽기 직전까지는 귀가 열려 있다고 말한다.

 

엄마는 내 손을 붙들고 말했다. “아들이 좋은 곳에 갔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산자가 죽어가는 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편안히 가게 도와드리는 거다. 죽어가는 사람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누군가 곁에서 대성통곡하거나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기도를 하면 말하고 싶을 것이다. “저 좀 조용히 떠나게 해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나는 이래서 죽음을 영혼의 벗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