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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Jun 01. 2023

삶과 죽음을 구별할 수 있을까?

엄마는 성자가 된 청소부였다

엄마는 왜 나이 50에 생을 마치려 했을까?

엄마는 남매인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50살까지만 살 거야.” 이 말은 무능하고 게으른 남편이 들으라고 한 말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에 더 깊이 꽂혔습니다. 한번은 딸이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왜, 그때까지만 살려고 해. 그때는 아마 내가 막 결혼했을 나이일 건데.” 그러자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만 살려고. 오래 살아야 잔소리쟁이밖에 더 되겠니.” 엄마는 왜 나이 50에 생을 마치려 했을까?

 

엄마는 새벽에 나가셔서 한밤중에나 들어오실 때가 많았습니다. 주로 몸을 쓰는 일로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배관기능사인데, 일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딸은 엄마가 한밤중에 들어와 거실에서 씻지도 않으시고 소파 위에서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엄마의 삶이 너무 고단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만일 엄마에게 자식이 없었다면 엄마는 이혼하셨을 것이다. 그러면 평범한 남자와 만나 재혼을 하셨거나, 혼자 벌어 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사셨을 것이다. 엄마가 이렇게 힘든 삶을 사는 것은 나 때문이다.”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딸은 성 정체성이 확립되는 사춘기부터 독신주의자가 되겠다고 수시로 다짐했고, 나이 30이 넘어서는 그 신념이 확고해졌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빈둥빈둥하시고 엄마는 몸이 고된 일을 하십니다. 딸은 까칠하면서도 덤덤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무슨 낙으로 살아?” 그랬더니 엄마가 반문하셨습니다. “너는 낙과 낙이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니?” 딸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딸은 자신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었는데, 하고 운명을 원망하곤 했습니다. 딸은 엄마가 이렇게 되묻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좋은 환경과 좋지 않은 환경을 구별할 수 있겠니?” 딸은 문득, 이렇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지.” 

 

엄마는 딸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혼잣말하듯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낙과 낙이 아닌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지.” 딸이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나이 50까지 산다고 했잖아. 엄마 나이 55인데 5년 남았네.”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은 거야. 사람은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않게 될 때, 바로 그때가 떠날 때야.” 엄마의 선문답 같은 말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엄마의 선문답은 엄마의 삶에서 나왔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물론 엄마는 여전히 따뜻하기보다는 차갑고, 나이 50이 넘어서는 화도 잘 내고, 어떤 때는 집안일에는 무관심하고, 아버지에게는 일의 정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엄마의 특징은, 엄마는 몸과 마음이 분리된 존재였습니다. 엄마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셔서 직장에서도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마음은 당신이 하는 일과는 분리됐습니다. 늘 몸 쓰는 일을 하셨으면서, 일 자체에 대한 불평은 없었습니다. 피곤하면 긴 잠을 주무셨고, 마음은 당신이 하는 일이 아닌 다른 곳에 가 계신 듯했습니다. 

엄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눈 지 3개월 정도 지났을까. 엄마의 허리 부분에 급 통증이 시작됐고,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딸에게 엄마의 남은 생이 3개월 정도라 했습니다. 남은 것은 치료가 아닌 통증관리라 했습니다. 딸은 엄마의 마지막에 엄마가 원하셨던 제주도 여행이라도 함께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몸은 이미 여행할 수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사람이 몸이 이렇게 갑자기 망가질 수도 있는 것인지.” 


딸은 고생만 하고 떠나는 엄마의 지난 인생이 슬펐으나, 이상하게 너무 슬프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건 뭘까? 엄마가 당신의 죽음을 너무 당연히 받아들여서였습니다. 엄마는 통증을 잘 참으셨습니다. 당신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으니 조금도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오히려 문병하러 온 사람들을 위로했습니다. 엄마는 4개월 정도 통증관리를 받으시고 떠나셨습니다. 엄마에게는 정말 삶과 죽음이 하나였던 겁니다. 

 

50세까지 산다는 엄마의 평소 말,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5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신 것은 아닙니다. 오래 살기를 원했어도 단명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엄마의 경우, 50세까지 산다는 말씀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이어주는 엄마의 깊은 무의식에서 나왔을 겁니다. 엄마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공부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러나 방송통신으로 대학 공부까지 하신 분입니다. 엄마의 몸은 항상 고단하셨는데, 그래도 엄마는 틈만 나면 책을 읽는 분이셨습니다. 침묵의 성자라고 일컬어지는 바바하리다스가 쓴 “성자가 된 청소부”, 엄마야말로 성자가 된 청소부였습니다. 




죽음 및 일반심리상담 문의 psm04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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