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무의식(원형)은 인생의고뇌를 만들고 해법도 제시한다

분석심리학과 절대지

집단 무의식(원형)은 인생의 고뇌를 만들고 해법도 제시한다 

사람의 내면에는 문제를 풀어가는 힘이 본래부터 존재합니다. 아니, 문제가 있고 해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문제를 푸는 해법이 존재하고 거기서부터 문제가 파생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문제는 항상 해법과 함께 존재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소망과는 상관없이 삶의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의 해법도 제시함으로 사람을 성장으로 안내하는 정신요소를 원형(原型, archetype)이라고 합니다. 

분석심리학자 융에 의하면 원형은 개인적으로 습득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 경험에 선행하는 인류 진화의 정신적 유산입니다. 원형은 집단 무의식에 있는 보편적 심리 구조, 그리고 본능적 힘의 원천입니다. 원형은 절대지로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원형에는 각자가 살아야 할 인생 로드맵이 그려져 있습니다. 성장의 중요한 지점마다 원형은 우리가 예상한 방법으로, 또는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은밀하고 조용히, 또는 강하게 휘몰아치며 사람을 성장시킵니다. 

원형은 심리적으로만 일어나는 성장 동력이 아닙니다. 필요하면 외적 사건도 발생시키거나 조정하여 사람이 ‘자기실현’을 하게 한다.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고뇌, 갈등, 아픔, 상처, 시련 앞에서 우리는 망연자실합니다. 본능적으로 실체를 알 수 없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또 다른 나’는 바로 ‘원형’이다. 원형은 신앙의 대상에 투사되기도 합니다. 

원형은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가?

저는 20여 년 정신분석 심리상담을 하면서,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원형이 어떻게 일하는지 세심히 살폈습니다. 대체로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원형은 심리적 혹은 외적 사건을 만들어 사람을 궁지에 몰아 놓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로움, 무력감, 내적 방황, 질병, 가족 및 지인의 죽음, 인간관계에서 상처, 물질적 손실, 실직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것들이 방문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저항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일종의 표지판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얄팍한 보상을 구하며, 얄팍한 사람이 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좀 더 가까이서 관찰했습니다. 원형은 지연이 되더라도, 언젠가는 그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가게 한다. 그러니 삶의 제반 문제를 피하지 마세요.

둘째, 원형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자아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함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원형은 이전의 자신감과 경험의 한계치를 겸손히 인정하게 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모든 것을 내 인생의 한 퍼즐 조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선별하지 않고,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인생을 완성하라고 주신 신의 퍼즐 조각 중 하나임을 자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면 환경과 조건이 변하지 않아도, 그것과는 무관하게 예상하지 않은 마음의 평화가 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환경과 조건의 개선에만 열을 올리는지! 그들은 평생 그 일을 해도 모자랍니다.

셋째, 원형은 의식의 수준을 한층 높입니다. 더 높은 산에 올라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전에 자신을 괴롭히던 일들이 하찮아 보인다. 인간관계의 갈등이 현저히 사라지고, 함께 어울렸던 사람들과 이전의 일로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삶을 관조하는 능력이 생기고, 외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는 내적 확신을 얻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더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원형은 그 길을 가게 한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리고 용기 있게.

-저의 신간 "오늘부터 나를 위해 울기로 했다"의 서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