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처음으로 걷기 모임에 함께 했다. 다소 어색해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사실 걷기 모임 멤버들은 나에게 엄마뻘, 할머니뻘 되는 분들이다. 나는 그 분들이 때로는 엄마처럼, 또 때로는 내 할머니처럼 느껴져 좋았다.
할머니들과의 대화는 영어 공부가 되기도 했다. 특유의 느릿한 말투도 있었지만 할머니들이 나를 위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기도 했다.
걸으면서 나누는 이런저런 이야기에서 영국 사람들의 사고 방식도 엿볼 수 있었다. 할머니들은 대다수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지내기 위해 각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영국의 큰 명절은 크리스마스다. 우리 나라에서 설과 추석, 한 해에 두 번의 큰 명절을 치르는 것을 생각하면 1년에 한 번이니 수월하게도 여겨진다. 하지만 한국이나 영국이나 비슷한 건, 자식들의 귀성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인가 보다. 몇몇 할머니들은 자식들이 크리스마스에도 찾아 오지 않는다며 서운해 했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걷기 모임이 중지됐다. 물론 코로나로 인한 제재가 없어진 뒤 모임은 재개되었지만 한동안 가지 못했다. 그럭저럭 영국 생활에 적응한 나에게 다른 우선 순위들이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얼마 전 오랜만에 걷기 모임에 참여했을 때다(앞으로 참여가 힘들다고 얘기하러 간 날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카렌이 손녀 얘기를 꺼냈다. 카렌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는데 딸이 몇 해 전에 낳은 손녀이다. 5일만의 진통 끝에 아기를 낳았다는 얘기에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카렌이 즐겁게 손녀에 대해 얘기하자, 팸이 다른 손주 계획은 없는지 물어본다. 이에 카렌은 하퍼는 자신에게 유일한 손주가 될 것 같으니 하퍼와의 시간을 만끽하겠다고 했다. 이를 얘기하는 카렌의 태도는 명랑했다.
카렌의 딸은 4년 전에 결혼했다. 결혼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생겼고 출산을 했지만 카렌의 딸은 전업주부가 되기를 거부했다.
한편, 카렌의 아들은 성공한 사업가로 여자 친구와 동거중이다. 둘이 오랜 기간 함께 했고 너무 잘 지내고 있지만 따로 결혼식을 올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나 : 둘이 아기를 낳을 계획도 없는 거예요?
카렌 : 내 아들을 내가 알지만, 딱딱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야 만족하는 성미야. 지금 하는 일도 많고 바쁜데 그런 자신의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아기를 낳아 기를 것 같지는 않아.
나 : (추측형 대답에 의문이 들어) 그런 얘기를 직접 나누진 않아요?
카렌 : 둘이 아기를 낳을 계획이 없는데 거기에 얘기 낳을 의사를 물어보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봐. 혹시 얘기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안 생기는 거라면 물어봐서 괜히 마음만 상하게 하는 거고.
이에 난 '한국에 있는 우리 엄마라면 한 번쯤 물어봤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영국 엄마 카렌의 배려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로는 카렌의 아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해졌다. 카렌의 아들은 이런 엄마의 배려를 고마워할까, 아니면 생각도 못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