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의 어느 날, 혼자 코스트코(Costco)로 향했다. 코스트코 가자는 얘기에 남편의 반응이 영 시큰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혼자서 가주겠어!'
약간의 모험심도 발동했다. 좀처럼 혼자 나가는 일도 없거니와 장거리 운전도 그다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스스로를 좀 더 나만의 안전지대(Comfort Zone)로부터 밀어내고 싶기도 했다.
이렇게 코스트코에 가고자 한 또 다른 이유는 시댁 단톡방이었다. 이런저런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시댁 단톡방에 종종 코스트코가 등장하는 것이다.
'코스트코에 갈 계획인데, 필요한 물건 있으면 말씀하시게'
그럴 때마다, 뭘 부탁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다. 코스트코에 가본 적이 없으니.
"코스트코에서 어떤 걸 파는지 알아야 부탁도 할 텐데요. 모르니까 부탁도 할 수가 없어요."
그러자 시댁 식구들이 입을 모아 얘기한다.
"코스트코에는 다 있어! 없는 게 없어!!"
아니, 안다고요. 다 있는 거. 하지만 무작정 '세탁세제 아무거나 좀 사다 주세요' 하라는 건가. 어떤 제품을 어떻게 파는지 본 적은 있어야 'oo 세제 xx 용량으로 좀 부탁할게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코스트코를 극찬하는 유튜브 영상들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질 좋은 육류와 해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한 번은 가서 직접 봐야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도 공감이 될 터였다.
1시간 가까이 운전해 코스트코에 도착했다. 초행길에 장거리라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던 듯하다.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자 안도의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오늘은 일단 뭐가 있는지 둘러보자. 그러다 괜찮다 싶은 물건이 있으면 한두 개, 카트에 담아도 되고. '
코스트코 매장 입구에는 체구가 단단해 보이는 경비원이 서 있었다. 마트 매장 들어가기 무섭게 웬 위압감이람. 활기 넘치는 쇼핑 매장과 다소 무게 잡은 경비원의 존재가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큰 매장 입구에서 경비원을 보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러려니 하며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성큼성큼 멤버십 만드는 창구로 향했다. 멤버십 카드를 만들어야 입장이 가능하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크게 쓰인 멤버십 가격을 눈으로 훑었다. 1년 가입, 평생 가입, 추가 인원 가입 등, 다양한 가격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멤버십에 가입해야 이득일지, 재빨리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렸다. 조금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을 때다.
"멤버십 카드를 만들고 싶은데요."
"멤버십 가입 자격 요건을 갖추고 있나요?"
아니, 이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마트 멤버십에 무슨 자격 요건이 필요하다는 건가? 내가 잠시 멍해 있자, 직원은 자격 요건이 적힌 종이를 내민다.
언뜻 눈으로 훑어보니, 전문직 종사자들, 기술 자격증 보유자, 교사, 공무원 등이 자격 요건에 해당됐다. 물론 주부인 나에게 그런 자격 요건이 있을 리 만무했다.
멤버십에 가입해야 입장이 가능한 것까지는 어거지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렇게 멤버십 가입에 제한을 두는 건 무슨 심산인가. 설마 이런 제한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허탈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퇴근해 돌아온 남편에게 이 일을 얘기했더니, 영국인 남편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영국 코스트코는 왜 멤버십 가입에 제한을 두었을까?
문득 남편 친구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편의 친구 크리스는 2019년 헤더와 결혼했다. 이듬해 코로나가 터져 모든 모임이 제한되었기에, 그때 결혼하기를 잘했다는 얘기를 나누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친구들 왈, 엄연히 따지면 헤더는 크리스와 결혼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란다. 아니, 영국 역사에서는 만민평등이 안 이루어졌나? 21세기에 웬 신분??? 물론 영국은 왕실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모든 국민들이 평등하다는 인식 속에 지내는 게 아니었나?
영국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현대 사회에서도 영국에는 엄연히 '신분'이 뿌리 깊게 존재한다. 물론 산업 혁명 이후, 신분을 떠나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부를 축적하는 게 가능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영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신분'과 '계급 의식'이 깊이 깔려 있다고 했다.
또한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영어에도 차이가 있다고 했다. 상류층이 사용하는 영어와 과거 하층민이었던 사람들이 사용하는 영어가 완전 다르다는 것이다.
'크리스가 사용하는 영어가 달랐던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여전히 영어를 배우는 입장인 나에게는 그런 구분이 쉽게 될 리 만무했다. 크리스와 대화를 많이 나눠본 것도 아니었다. 늘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한다는 게 기억할 수 있는 특징의 전부였다.
코스트코의 멤버십 가입 자격 요건과 영국의 계급 의식을 연결시키는 건 다소 억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의식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코스트코의 멤버십 가입 제한을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