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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마늘 Apr 26. 2023

책 읽기 봉사하는 100세 피터 할아버지


가끔 영국에서의 노후를 그려본다. 나이 들어 이 곳에서 지낸다는 건 어떤 것일까.




주위 사람들을 보며 상상해 본다. 하지만 내가 아는 영국 할머니들의 모습에서도, 한국 할머니들의 모습에서도 나이 든 내 모습을 그려 본다는 것은 왠지 쉽지 않다.




3~4년 전, 처음 영국 할머니들의 걷기 모임에 참여했다. 다행히 지금도 대부분 그 때와 다름없이 정정하시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느려진 걸음 걸이에서는 세월이 느껴진다.




그러나 팸 할머니의 "우리 걸음이 예전보다 느려졌지?" 하는 질문에는 "에? 전혀 모르겠는데요" 하고 능청을 떨었다. 그러자 팸 할머니가 활짝 웃었다.  




얼마 전, 남편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다. 공동 거실에 티비가 틀어져 있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거실에 앉아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졸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남편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평생 열심히 생활하신 분들이다. 남편이 어릴 때 기억하는 외할아버지는 늘 일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기계공이었던 할아버지는 낮의 일이 끝나도 집에 오면 차고에서 무언가를 늘 고치고 있었다고.




할머니도 깔끔함을 자랑하는 분이었다. 4남매를 키우면서도 매일 집안 청소기를 돌리고 다림질을 하셨다고 한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라도 돋는 것처럼. 심지어 몸이 아플 때도 집안일을 손에서 놓지 않아 가족들을 걱정시킨 분이었다.




그런 두 분이 영국에서 코로나 규제가 풀릴 무렵, 차례차례 요양원으로 모셔졌다.








올해 1월 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BBC 브렉퍼스트 뉴스를 보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할아버지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젊은 시절 참전 용사이기도 한 100세의 피터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두 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책 읽기를 도와주는 봉사를 한다. 딸의 추천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피터 할아버지는 아이들과 일대일로 앉아 읽기 게임을 한다. 책을 펼쳐 놓고 아이와 할아버지가 한 쪽씩 번갈아가며 읽는다. 이 때, 점수판이 있어 틀리게 읽으면 상대방이 감점을 하는 방식이다. 할아버지가 틀리자 아이는 이를 옆에 놓인 종이에 기록한다. 책을 다 읽었는데, 아이가 이겼나 보다할아버지가 칭찬한다. 이에 아이는 꺄르르 웃는다.




이렇게 하니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실수하지 않도록 집중해 읽고 또 할아버지가 읽을 때는 할아버지가 실수하지는 않는지 집중해 듣는다.  




학교 교장은 인터뷰에서 할아버지가 인내심이 강하고 너그러워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봉사활동을 한 2년간 아이들의 책 읽기 실력이 눈부시게 향상되었다고도 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이 봉사 활동이 일상의 활력이 되었다. 종종 길거리에서 할아버지를 알아 본 아이들은 멀리서도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10미터를 펄쩍 뛸만큼 기쁜 것이다. 또한 이렇게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것에 큰 보람과 소속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피터 할아버지는 아이들과 우정을 쌓아가며 비밀도 공유한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어떤 얘기들을 들려 주는지 부모들이 알면 당황스러워 얼굴을 붉힐 것이라고 웃으며 얘기한다.




마지막 장면이다. 할아버지가 봉사를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한 아이가 할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친다. "조심해 가요. 피터 할아버지(Mr Davis), 세상 최고의 책읽기 선생님!"




책 읽기 봉사하는 100세 피터 할아버지




저런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좋을텐데. 저런 노후를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지만 현실은 당장 10년 뒤의 내 모습을 그려 보는 것도 쉽지 않다. 노후를 영국에서 보내게 될 지, 한국에서 보내게 될 지조차 모르겠다.




어디에 있든 피터 할아버지처럼 노후에도 지역 사회에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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