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국 마늘 May 12. 2023

밥 먹으면서 무슨 얘기해요?

결혼하고 2년쯤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나처럼 국제 결혼한 한국 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밥 먹으면서 무슨 얘기해요? 썰렁하고 어색한데 할 얘기가 없어요."


"맞아, 맞아. 우리도 그래요. 그래서 유튜브 보면서 밥 먹어요."




급 공감대가 형성되어 둘이서 까르르까르르 한참을 웃었다. 




사실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하루에 두세 끼를 같이 먹는 사이인데, 밥 먹을 때 할 말이 없다는 건 고역이었다. 무엇보다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나였다.  












신혼 초는 물론 달랐다. 우리는 식사 중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거의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상대가 모르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따위 좀처럼 없었다. 




언어의 장벽도 있었다. 당시 나는 영어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남편의 한국어도 어느 정도 하고 싶은 말들을 할 수 있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과 무언가를 맛깔나게 전달하는 것은 또 다른 레벨의 언어 실력이다. 




종종 우리가 함께하는 식탁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남편이 공을 던지면 내가 이를 한 번 받아친다. 남편은 다소 무리해 이를 다시 받아치지만 공은 어느새 아웃. 게임 종료. 아니 대화 종료.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대안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이거 재미있을 거 같아. 같이 보자!'




그렇다. 우리에게는 유튜브가 있었다. 유튜브 안에는 365일, 세끼를 커버하고도 남을 영상들이 있었다. 우리가 초기 즐겨 봤던 영상은 Awesome World였는데, 영상을 보며 같이 깔깔대고 웃을 수 있었지만 왠지 마음 한편이 찝찝했다. 




'이렇게 대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장거리 연애를 하던 때에는 달랐다. 별것도 아닌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참을성 있게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상대가 밤하늘의 별처럼 마냥 예쁘고 매력적으로 반짝반짝 빛나던 연애 시기. 서로의 어설픈 언어 표현도 마냥 귀엽게만 비쳤다. 




고민하게 된 건 비단 식사 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국인 남편은 정말 회사, 집, 회사, 집 밖에 몰랐다. 늘 정시에 퇴근해(야근도 1년에 손꼽을 정도로, 그나마도 집에서 했다) 저녁을 같이 먹고 쉬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쉬면서 같이 할 만한 게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각종 미드와 영드, 한드, 일드를 섭렵했다. 그레이 아나토미, 엘리멘트리, 데드 투 미, Never have I ever, 셜록 홈즈, 아저씨, 미생, 비밀의 숲, 미스터 선샤인, 아리스 인 보더랜드 등. 정말이지 한국에 살 때보다 더 많은 한국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코로나 기간을 버티게 해 준 일등 공신들이었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보다 같이 TV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은 것 같아 재미있게 보면서도 마음 한편이 찜찜했다. 




코로나에서 벗어날 즈음, 우리는 매일 저녁 영상을 보는 일상에서도 벗어나고 싶어졌다. 




"같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잘 모르겠어."


"그러면 각자 하고 싶은 걸 말해 보자. 번갈아 가며 상대방이 원하는 걸 같이 해 보는 거야. 해 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그렇게 우리는 같이 할 거리를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결혼 5년 차. 우리는 이제 같이 몇 시간을 앉아 퍼즐을 맞춘다. 그리고 종종 메뉴를 정해 같이 요리한다(최근 남편은 피자 만들기에 빠져 있다). 남편이 좋아하는 고카트(gocart, 어린이가  소형 자동차를 상상하면 된다. 성인용도 있어 영국에서는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미니 자동차에 엔진과 1인승 좌석이 .), 고에이프(go ape, 영국과 미국에서 활성화되어 있는 야외 체험 활동.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밧줄 건너기, 타잔 체험 등을 할 수 있다)와 같은 액티비티도 함께 했다. 




우리는 이제 같이 여행을 다니고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얼마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가기 전까지 남편의 염려증으로 아웅다웅했지만 아무 탈 없이 잘 다녀왔다. 다음으로는 3주 한국 여행을 계획 중이다. 




내 영어 실력이 늘며 영어로 주고받는 농담과 장난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내가 회계 수업, 요리 수업을 듣고 온 날이나 회계 부서에서 일을 하고 온 날에는 그렇게 할 말이 많다.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랑 어떤 얘길 나누었는지, 일일이 다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여전히 밥을 먹으며 우리는 때때로 유튜브를 본다. 밥 먹을 때뿐이겠는가. 자기 전에도 한 번씩 들여다보는 게 유튜브다. 미드도 틈틈이 같이 본다. 안 보려고 해도 미드는 다음 내용이 궁금해 안 볼 수가 없다. 




하지만 할 말이 없어서도 아니고, 다른 선택권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저 같이 할 수 있는 많은 활동 중의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영국 엄마 카렌이 아들을 배려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