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날, 눈이 오면 난 집에 갈 거야. 저녁에 수업 들으러 오지 마요. 이거 농담 아니야. 눈 오면 난 컬리지(College)에 남아서 수업할 생각 없어. 눈 오는 날 밤에 운전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그러고 보니 낮에 눈이 조금 내렸다. 하지만 내렸다고 하기 민망할 정도의 양이었다. 쌓이기는커녕 내리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까.
그런데 학생들이 맞장구친다.
"저도 눈 오면 안 올 생각이었어요. 눈 오는 날 운전하는 건 위험하잖아요."
"내가 모레 눈 올 거라고 했지?!"
"그러면 목요일 오전에 확실히 알려 주세요, 당일 수업이 정말 취소되는지 어떤지."
아니, 진심인가. 눈 좀 온다고 수업을 하지 않겠다는 선생님이나 눈이 오면 어차피 수업 들으러 올 생각이 없었다는 학생이나. 한국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혼자 피식 웃었다.
다음 날 오후 3시쯤인가, 이메일이 왔다. 무급으로 일을 하고 있는 컬리지 회계 부서 담당자 일라이자였다.
'내일 눈이 많이 오면 직원들이 재택근무할 예정이야. 내 번호는 0780343xxxx야, 네 전화번호를 문자로 알려 줘. 내일 아침에 상황을 알려 줄게. 네가 헛걸음하지 않게.'
그러고 보니 인적 사항을 적어 서류로 제출하긴 했지만, 일라이자와 개인적으로 연락처를 주고받은 적은 없었다. 고맙다고, 아무쪼록 상황을 알려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혹시나 싶어 이메일로도 연락처를 알렸다.
안 그래도 오후부터 눈이 오기 시작한 터였다. 어제 회계 수업에서 얘기하던 상황이 생기려나. 은근히 회계 부서 일을 안 갔으면 하는 마음이 일었다. 곧 있을 시험 때문에 공부할 게 많았다.
밤새 눈이 왔다. 3월이라 설마 이렇게까지 올까 싶었는데. 창밖을 내다보니, 내리는 눈으로 깜깜한 밖이 마치 조명이라도 비춘 듯 은은하게 빛났다.
다음 날 아침, 일라이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젯밤에 눈이 와서 모두 재택근무하기로 했어. 오늘도 눈이 계속 온다고 하니까 오늘은 집에서 쉬어.'
진짜 눈 때문에 일을 안 가게 되다니.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지만, 마치 수업을 땡땡이치는 기분이었다. 묘하게 신이 났달까.
그런데 이게 시작이었다. 곧이어, 회계 수업이 취소되었다는 공지 문자와 이메일이 날아온 것이다. 그리고 10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눈 때문에 컬리지 전체가 점심시간 이후로 닫는다는 전체 공지가 핸드폰 알림에 떴다.
'이거 심상치 않은데..?'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자니,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알림이 연거푸 울렸다. 눈 때문에 귀가가 힘들 학생들을 위한 버스 이용 안내, 내일 컬리지가 문을 여는지에 대한 추후 공지 안내, 당일 시험 보기로 되어 있는 학생들을 위한 추가 조치 안내였다.
조금 내리다 말겠지 했던 눈은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내렸다. 온도를 확인해 보니 최상 기온 1도, 최하 기온 0도. 추웠지만 도로가 얼지는 않겠다 싶었다. 아침에 출근했던 남편도 점심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금새 수북히 쌓인 눈
눈 때문에 도로가 얼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곳 도로는 한국 도로와 달리 신호등 없이 10km, 20km씩 이어지는 도로들이 많다. 신호등 대신 라운드 어바웃으로 도로 교차 구간을 통제하며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가 많다. 커브 구간도 많고 언덕처럼 가파른 도로도 꽤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 딱히 대책이 없다. 그냥 밖에 나올 상황을 줄이는 게 최선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영국은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나라가 아니다. 그것도 3월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건 드물다고 했다. 그러니 좀 더 적극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애매한 것이리라. 이렇게 눈이 올 경우를 대비해 많은 돈을 들여 도로를 정비하기엔 눈이 오는 빈도가 너무 낮은 것이다.
금요일이 되자 '이 정도 눈쯤이야 내가 녹여주마!' 하듯이 해가 '쨍'하고 나타났다. 덕분에 눈은 급속도로 녹았다. 이틀 내내 집에 있어 갑갑했고 마침 부칠 택배도 있어 밖으로 나왔다.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보니 도로에 어마어마하게 큰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그렇게 많이 내린 게 다 녹았으니..'
차가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양쪽으로 진흙탕 파도를 일으켰다. 차들이 속도를 늦춰도 그 옆에선 진흙탕 세례를 면하기 어려웠다. 덕분에 그곳을 지날 땐 차가 오나 살피며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