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요리사 자격증 과정을 위해 유니폼(상의, 하의, 앞치마, 모자)을 스몰 사이즈(S)로 주문했다. 사이즈 안내가 나와 있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았다.
'스몰로 주문하면 대충 맞을 거야.'
한국에서 옷을 살 때도 늘 XS로 사는 편이었다. 유니폼도 XS로 주문할까 하다 그나마 S로 주문한 건, 좀 넉넉한 사이즈로 주문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배달된 유니폼의 상의와 하의는 상당히 컸다. 배달된 주문서를 보니 이 스몰 사이즈는 아시아에서는 미디엄(M)과 동일하다고 적혀 있었다.
'아니, 이런 건 웹사이트에서 안내해야 하는 거 아냐?!'
담당자가 눈앞에 있다면 따지고 싶었다(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탓이지만). 하지만 이미 배달된 유니폼이었다. 반송하는 번거로움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봤자 유니폼 아닌가. 또한 대(大)는 소(小)를 겸하는 법이다. 작은 옷은 안 들어가니 못 입지만 큰 옷은 여기저기 좀 접어 입으면 된다.
유니폼에 붙어 있던 상표를 다 떼어 버렸다. 그런데 이게 두 번째 실수일 줄이야... 이때 미처 앞치마와 모자까지는 제대로 착용해 보지 않은 상태였다.
수업 당일 아침, 싹 빨아 빨랫대에 걸려 있던 유니폼을 잡아 채, 대충 접어 가방에 쑤셔 넣었다. 꼭 출발 시간에 가까워져 허둥대는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그런 나를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던 남편은 어느새, 내 물병을 싸 주며 내가 서두를 수 있게 돕고 있었다.
부랴부랴 도착한 컬리지. 아슬아슬하게 출발해서 딱 시간에 맞춰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난 어쩌면 나도 모르게 이 스릴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늦지 않아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탈의실로 향했다. 상의와 하의를 이미 입고 있던 옷 위에 입었다. 앞치마도 착용했다. 그런데 헉..! 모자가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상의, 하의, 모자 다 스몰(S) 사이즈인데. 상의와 하의는 도리어 큰데 모자만 내 머리에 맞지 않다니. 숟가락에 비유했던 나의 동양인 체형이 증명되는 슬픈 순간이었다. 목이 길어 슬픈 짐승, 기린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이를 어쩐다..'
모자는 다소 고통을 감수하며 바짝 당겨 쑤셔 넣으니 그나마 내 머리에 붙어있어 주었다. 모양은 좀 우스꽝스러웠지만(누가 봐도 타이트한 머리 둘레).
문제가 된 모자. 안타깝게도 가까이하기엔 쪼금 아담한 당신이다.
외국에 살다 보니 이처럼 살짝어려움을 겪는 게 사이즈인데, 또 다른 예로, 예전에 영국에서 웨딩 슈즈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있다.
5년 전, 영국에 체류하면서 한국에서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결혼식 준비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웨딩드레스와 웨딩 슈즈는 영국에서 준비해 가기로 했다. 직접 착용해 보지 않으면 고르기 힘든 드레스와 신발의 특성상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추후 영국에서도 다시 한번 작게라도 결혼식을 하자는 얘기를 남편과 나누고 있었다. 그렇다면 두 번 웨딩드레스를 빌리는 것보다는 구매하는 것이 낫지 싶었다(웨딩드레스 빌리는 가격이 만만치 않기에). 웨딩드레스는 비교적 수월하게 2주 안에 골랐다. 시어머니의 센스와 발 빠름의 공조였다.
그런데 문제는 웨딩 슈즈였다. 좀처럼 사이즈가 맞으면서 마음에 드는 웨딩 슈즈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어머니와 함께 근처 구두 가게는 물론 대형 백화점을 순회했다. 온라인에서 구매해 배송받았다 반송하기도 여러 번. 하지만 영국 어디에서도 내 운명이 될 웨딩 슈즈는 그 뒷굽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 발 사이즈는 225mm로 영국 사이즈 2와 3 사이다. 거기다 소위 말하는 '칼발'이라 신발이 딱 맞지 않으면 신발에서 발이 잘 빠진다. 또한 굽이 높은 여성 구두는 신다 보면 발이 앞으로 쏠려 신발 가죽이 조금씩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한 특성상 새 구두를 신었을 때, '어? 좀 타이트한데?' 싶은 구두로 구매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시간이 지날수록 신발이 자신에게 딱 맞는 사이즈가 되며 높은 구두 굽에도 신었을 때 안정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보통 여성 성인 신발 사이즈가 3부터 나온다. 그러다 보니 내 사이즈의 구두 자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냥 구두도 아닌 웨딩 슈즈를 찾자니 사이즈는 물론 색상, 디자인, 착용감 등 여러 면을 고려해야 했다.
사이즈를 찾아 십 대들이 프롬(Prom)에 신는다는 신발들까지 둘러봤지만 허사였다. 나는 웨딩 슈즈로 심플하면서 실용적인 디자인을 원했다. 그런데 프롬 신발들은 사이즈는 맞을지언정 눈에 띄게 화려한 장식을 달아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영국에서 3개월 정도 이런저런 신발 가게를 찾아 헤매다 지친 나는 결국 모험을 강행하기로 했다. 한국에 도착해 웨딩 슈즈를 구매하기로 한 것이었다. 한국에 도착하면 결혼식까지 5일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 사이 한복 피팅, 결혼식장 방문, 국제 혼인 신고, 시부모님 마중(우리보다 3일 늦게 입국하시기로 되어 있었다) 등등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웨딩 슈즈를 대충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늘 가던 신발 가게 매장에서 손쉽게 마음에 드는 웨딩 슈즈를 고를 수 있었다.
한국에서 구매한 웨딩슈즈
한국에서는 이렇게 간단히 발견할 수 있는 걸, 영국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