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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마늘 Apr 10. 2023

첫 회계 부서 미팅 참석

일을 마칠 즈음, 일라이자(Eliza)가 물었다.



"다음 주 수요일 오후에 회계 부서 전체 미팅이 있는데, 올 수 있어?"



미팅까지 참석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무급이래도 직원은 직원이구나. 알겠다고 했다.



그 다음 주 수요일 오후, 재택근무 중인 남편과 점심을 먹고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러다 무심코 일정을 확인해 보니 회계 부서 미팅이 있는 게 아닌가!



오후 1시 반 예정이었는데 세상에. 아침까지 분명히 기억하고 일정으로 적어놓기까지 했는데, 점심때가 되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시계를 보니 이미 오후 1시 10분.



'망했다!'



회색 츄리닝 바지를 입고 있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부리나케 차 키를 집어 들고 뛰쳐나갔다. 컬리지와 집은 차로 15분 거리. 늦지 않기를 기도하며 정신없이 달렸다(차에선 안전 운전하면서 마음만 달림). 사무실에 도착하니 1시 29분. 내가 들어서자, 회계 부서 직원들이 회의실로 가기 위해 하나 둘 일어났다. 이 완벽한 타이밍이라니!!



마치 일부러 정시에 맞춰 온 듯이 행동하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트레이시(Tracy)의 뒤를 따라 주의를 살피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회의실은 굉장히 컸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대기업 회의실 같았다. 안에서는 이미 판매부 팀장 조(Joe)와 회계 총괄 팀장 카렌(Karen)이 미팅을 준비하고 있었다. 판매부의 에스더(Esther)와 베키(Beckie), 구매부 팀장인 일라이자도 곧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휴가 간 줄리(Julie)까지 합하면 총 7명.. 컬리지 규모가 있는데 회계 부서 인원은 생각보다 적네.'



회의에서는 GDPR(일반 데이터 보호 법률)과 내부 감사, 학생 수 증감에 따른 버스 노선 증설(지역 버스 회사와 협력), IT 소프트웨어 관련 안내(기존에 좀 문제가 있었던 듯). 학생들 여행 경비 관련 보험 회사와의 협의 등의 내용이 다루어졌다.



재미있는 대화는 회의가 끝나갈 무렵 이어졌다. 다음 달 회의를 외부에서 하는 모양이었다. 회의를 점심을 먹으면서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곧이어, 근처 맛집이 어디인지, 누가 운전해서 갈 건지 등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친목 도모 모임도 별도로 하는지, 빙고 게임을 하러 가자, 볼(Ball, 무엇을 하는 곳인지?)에 가자는 등의 의견들도 나왔다. 미팅은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영국에서 이런 회의에 참석하는 건 처음이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앞으로 영국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막막했는데..!'



과연 영국에서 영국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회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쁨과 동시에 살짝 울컥함이 올라왔다.




다음 날 오전 근무를 마친 뒤, 트레이시, 일라이자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출근한 지 3주 차였지만 이렇게 셋이 점심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코티지 파이(Cottage Pie) 맛있겠는 걸.'



점심 도시락을 싸 왔지만 식당 메뉴를 보니 구미가 당겼다. 도시락이야 집에 가서 먹어도 그만이었다. 쪼르르 일라이자 뒤에 붙어 식판 줄에 합류했다. "코티지 파이 하나 주세요" 하자, 상냥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코티지 파이를 듬뿍 담아준다. 거기에 감자와 양배추 복음이 더해졌다.



컬리지 점심, 코티지 파이



최근 영국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류 사용이 금지되었다. 덕분에 종이 접시에 수북히 담긴 코티지 파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가격도 3파운드가 조금 넘었다. 어느 식당에 가도 이런 가격에 한 끼를 먹는 건 불가능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가능한 가격이리라.   



이런저런 얘기 중에, 내가 트레이시에게 물었다.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어요?"

"가만있자, 내가 여기 처음에 계약직으로 들어왔거든. 10주 계약직으로 들어왔는데 계약이 끝나고 그대로 일하게 됐어.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 8년, 9년.. 9년 됐네."

"9년이요?!! 와.."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일라이자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제 미팅에 참석했던 에스더 있지. 작년에 너처럼 무급으로 일을 시작했어. 그러다 직원 모집 공고가 났을 때 지원해서 정식으로 부서 직원이 된 거야. 베키도 원래 육아 휴직한 다른 직원 대신 임시직으로 들어왔다가 정직원이 된 케이스고."



일라이자는 잠시 말을 멈춘 뒤, 마치 '너도 잘해 봐'라고 말하듯이 나를 바라봤다.



트레이시는 만화 캐릭터 빨강머리 앤을 연상시키는 명랑함을 가졌다. 친절한 트레이시는 내가 대화를 못 따라가는 듯하면, 옆에서 부지런히 귀띔해 준다. 싱글맘인 일라이자는 최근 싱글 대디인 남자 친구 앤드류와 살림을 합쳤다. 그 결과, 네 명의 아이와 두 마리의 코커스패니얼을 돌보고 있다. 종종 자기 얘들이나 코커스패니얼을 빌려 줄 테니 데려가라는 일라이자는 엉뚱하고 재미있다.



과연 나도 이곳 정직원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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