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펭귄 러브즈 메브(Penguin Loves Mev)라는 네이버 웹툰을 참 재미있게 봤다. 당시 지금의 남편과 장거리 연애 중이기에 더 관심 있게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영국에 살면서 종종 이 웹툰의 에피소드가 떠오를 때가 있다. 당시엔 '그런가 보다' 하면서 봤던 내용들 중에 격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 에피소드 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메브가 방귀를 아무 때나 잘 뀐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엔 '그다지 드라마틱한 내용도 아닌데 왜 굳이 방귀를 소재로 삼았을까'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영국 남자와 살아보니 알겠다. 왜 펭귄이 방귀를 만화 소재로까지 삼았는지.
평소 데오도란트 냄새를 싫어한다.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같다. 남편이 사용하던 몇 가지 종류의 데오도란트가 있는데 내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서 대다수 사용을 못하게 되었다. 그나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골라 남편이 꾸준히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도 향이 여간 강한 게 아니다. 그래서 남편이 내 앞에서 뿌리면 질색을 한다.
남편은 자연스레 내가 있는 자리를 피해 데오도란트를 뿌린다. 그런데 이 데오도란트 냄새가 어찌나 강한지 2층에서 뿌려도 1층까지 그 냄새가 폴폴 난다.
하루는 1층에 있다가 남편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데오도란트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남편이 있는 침실에 들어가자 묘하게 냄새가 다르다.
나 : 자기, 방귀 뀌었어?
영국인 남편 : (눈을 과장해 크게 깜빡거리며) 왜??
이미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에서 진실은 너무 자명하다. 곧 남편은 낄낄거리다 못해 한참 배를 잡고 구른다.
남편은 평소에도 자주 '방귀는 웃겨! Farts are funny!'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남편은 뽀로로 캐릭터 '크롱'의 '방귀 뀌자' 노래를 아주 재미있어하기도 했다(내가 봐도 잘 만들긴 했다).
남편에게 수십 번은 들었으나 아직도 얘기할 때마다 남편이 배꼽을 잡고 웃는 얘기가 있다. 더운 여름날, 선풍기를 켜 놓고 공부하던 남동생의 선풍기에다 방귀를 뀌었던 이야기다. '이걸 이렇게까지 재미있어 할 수 있구나' 감탄스러울 정도로 재미있어한다.
영국에서 지내면서 방귀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생각나는 사례들이 19금이라 자세한 내용은 생략). 주로 유머 짤이나 누군가를 골탕 먹이는 내용인데 영국 사람들, 그런 내용을 몹시 재미있어한다. 부끄러워하기보다는 '그럴 수 있지', '웃긴다'와 같은 반응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이게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될 소재인가?? 정말 생각도 못했던 것들에서 문화 차이를 실감한다.
내가 한국인 커플들이 오랜 기간 사귀면서도 방귀를 트지 않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자 도리어 남편은 깜짝 놀란다.
"그게 가능해?!"
차마 내가 과거에 그랬다고는 얘기를 못했다.
이런 방귀는 구세주가 되기도 한다. 우리 둘이 툭닥툭닥하는 중에 둘 중의 한 명이 방귀를 뀌면 남편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냉랭했던 한랭 전선이 순식간에 온난 전선으로 바뀐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든 같이 웃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좋다. 그게 하물며 방귀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