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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월 Dec 29. 2020

도태남 담론의 이면

페미니즘을 모르는 남성은 도태될 것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눈을 떴다. 반면 남성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들은 여성혐오 문제에 분노하는 여성을 조롱한다. 그러나 걱정마라 그들은 곧 쉽게 도태될 것이다. 도태남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사회는 점점 여성주의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라고, 많은 사람이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어떤 남성이 도태된다고 했을 때, 그는 어떻게 될까? 




이런 상상을 해보자. 한 남성이 어떤 모임에서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했다. 주변 여성은 지적했지만, 그는 문제를 고치지 않았다. 그는 모임에서 쫓겨났다. 즉, "도태"된 것이다. 그는 이제 어떻게 될까? 


그는 울면서 반성하고 자신의 행동을 개선한다.

그는 반성하지 않고 여성들을 더 욕한다. 하지만 그가 더 이상 몸담을만한 공동체는 없다. 그는 도태되었기 때문이다. 


도태남 담론에서 이 두 가지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린다. 그런데 실제로 이럴까? 아니다. 보통 저 문제 남성은 다른 모임에 가서 똑같이 행동한다. 그런 사람은 쫓겨나고 쫓겨나더라도 결국 자신이 '있어도 무방한' 모임에 언젠가는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는 그곳에서, 그는 여성혐오 발언을 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피해자가 생긴다. 




그래서 도태남 담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도태남을 조롱'만'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 살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만이 도태남을 조롱할 수 있다. 


그래서 계속 치고 박는 것이 중요한다. 무엇이 잘못인지 지적해야 한다. 공동체에서 규율을 정해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제지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도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도태남들은 결코 도태되지 않는다. 도태되지 않는 곳을 찾아서 이동할 뿐이다.



사실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라 민망하다. 그리고 나조차도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 문제 남성들 때문에 너무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이들은 도태남 전략이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여유가 없는데 그 사람 교육은 언제 시키고 앉아있나? 도태가 편하다. 그래서 이해한다. 단지 도태남 전략이 갖고 있는 한계를 말할 뿐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알기에 공동체에서 반페미니즘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내가 먼저 지적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누군가는 지적하고 한마디를 해야 하는 게 (그리고 이것이 주변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니) 중요하니까. 그리고 모두가 더 쉽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희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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