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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월 Aug 31. 2020

안희정, 흠집 내기

자신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상대방을 흠집 내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이는 성범죄 사건에 있어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하는 대표적인 2차 가해행위 중 하나이다. 




내가 만약 도둑질을 했고 걸렸을 때, 피해자를 흠집 내면 어떻게 될까. 친구의 지갑을 훔친 뒤 걸렸을 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쟤가 저번에 나한테 주머니가 없다고 지갑을 맡겨달라고 부탁했어." 이 얘기를 듣고 아무도 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건 잠깐 맡긴 거고, 훔친 거랑 다르잖아."라고 다들 반박할 것이다. 


만약 때렸다면? "쟤는 저번에 술자리에서 웃긴 얘기 하면서 내가 때렸는데 가만히 있었어." 역시 비슷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거랑 그거랑 같냐?"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런데 성범죄 사건에서는 이게 적용되지 않는다. 성범죄 사건의 가해 행위가 발각되었을 때, "쟤가 그날 나한테 웃어줬어." 또는 "쟤가 다음 날 나한테 웃어줬어." 이러면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헷갈려한다. 성범죄 피해 다음 날에 어떻게 웃을 수 있는가? 또는 어째서 가해 행위 중에 저항하지 않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반대로 교통사고가 나서 심하게 다쳐 입원해 있는데, 내가 만약 다음 날에 웃었고 이를 보험 회사 직원이 발견했다면? 그러면 보험회사 직원은 이것을 보험 사기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다. 웃는 걸로는 판단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또한 직장 상사가 모욕적인 언행을 했을 때, 군대 내에서 구타 행위가 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모욕적인 언사와 폭행에 동의한 것이 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피해자는 그 순간이 두려워 저항하기 쉽지 않다. 그 순간에 맞받아쳐서 똑같이 욕을 하거나 녹음을 하거나 폭력 행위를 막고 맞서 때릴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는가. 심지어 그렇게 받아치면 더욱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것은 피해자(약자)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범죄에서 피해자의 언행과 행동보다는 가해자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데 반해 성범죄는 피해자의 성품을 판단한다. 


너는 평소에 웃어줬어. 너는 평소에 메시지를 자주 보냈어. 너는 그날 이후에도 이모티콘을 보냈어. 너는 그날 이후에도 친구들도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갔어. 너는 그날 이후에도 여행을 갈 때 상사에게 허락을 받았어. 등등. 


모범적인, 이상적인 피해자의 행동 규범은 없다. 있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해서,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를 흠집 내서 가해자가 빠져나간다. 




안희정의 모친상에 문재인 대통령이 화환을 보냈다. 다른 많은 정계의 인사들이 조문했다. 만약 안희정이 성범죄가 아니라 다른 범죄를 저질렀으면 어땠을까. 납치를 하거나, 살인을 하거나, 10억 이상 사기를 쳤거나, 강도짓을 했다면? 그랬다면 다들 조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들 아무렇지 않게 조문을 갔다.


2020년 대한민국이 어떻게 성범죄를 인식하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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