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동서고금 '성인(聖人)'에 관한 이야기는 왠지 가슴을 촉촉하게 한다.
희망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인류사에 몇몇이라도 성인들이 계셨던 것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일본의 역사 속에도 가히 ‘성인(聖人)’이라 칭송받는 대표인물이 있었다. 바로 쇼토쿠(성덕聖德) 태자이다.
그는 보위에 오른 적이 없다.
그러나 <일본서기>만 해도 576〜628년조에 걸쳐 무려 21개 곳에 그에 관련된 기사를 싣고 있다.
이를 필두로 <쇼토쿠 태자 전력(聖徳太子傳暦)>(917년 후지와라 가네스케 찬술)과 같이 태자상(太子像)을 집대성한 책이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일본 왕생극락기> 등을 위시한 수많은 저술서 속에 태자는 구세 관음(救世観音) = 구세자로 설명되어 있다.
일본의 천태, 화엄, 진언종 등 불교의 각 종파에서는 쇼토쿠 태자와의 관련을 전설화 시켜 자기 종파에 유리하게 이용하기도 할 정도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의 역사적 인물 가운데, 쇼토쿠 태자 정도로 많은 전기(傳記)를 가지고 있고, 현재까지 새로운 전기가 계속 쓰이는 인물은 없다, 동아시아 세계에 있어서 일본의 지위를 부동(不動)의 것으로 만들었다” (田村圓澄 <聖徳太子>)
와 같이 평가되며, 일본인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왜, 무엇 때문에 일본인들이 쇼토쿠 태자에 대해 그토록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보여 왔는가?
그것은 그가 명실 공히 ‘성인’이라 불릴만한 인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쇼토쿠 태자는 일본 최초의 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17조를 지어 그 안에서 스스로 말하길
“나는 반드시 성인은 아니다. 저쪽도 반드시 어리석은 자는 아니다. 이는 다 같이 범부일 뿐이다”(제10조)하면서도,
“5백 년 만에 현인(賢人)을 만나고, 천년에 한 사람의 성인을 기다리기 어렵다. 현성(賢聖)을 얻지 못하면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랴”(제14조) (<일본서기>604년)
라고 말하며, 그 자신 '성인'을 위시하는 이념을 힘주어 제시하고 있다.
이런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잘하고, 성인의 지혜가 있었다”(<동>593년 4월조)고 한다.
굶어 죽어가는 거지에게 옷을 벗어 주고 “이는 범인이 아니다. 반드시 진인(真人) 일 것이다”하여, 후일 사람들이 “성인이 성인을 알아보았다”라고 하며 공경하였다(613년 12월조; 가타오카야먀 기인 설화(片岡山飢人説話)).
그의 탄생에 마구간이 관련되어 우마야도 왕(厩戸王)이라 불린 것이나, 그의 사망에 관한 서술이 석가모니의 열반 기록을 방불케 하는 등, 가히 예수와 석가 전승의 합작판의 가치를 일본에서는 쇼토쿠 태자 전승에 쏟아부었다.
여기에 고구려 승려 혜자도 한몫 거든다. 그는 태자를 가리켜
“일본국의…… 실로 대성(大聖)이다” 하며, 그 또한 자신의 예언대로 다음 해 태자의 기일(期日)에 죽었으니, 당시 사람들이 “무릇 태자만이 성인이 아니라, 혜자 또한 성인이다”(621년 12 월조) 하였다.
이 같은 기록들은 모두, ‘성인’이라는 존재의 가치성을 위대하게 평가하여 전해 내려온 사연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성인’에 관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회자되어 왔다.
‘사랑(박애)’을 이야기한 예수, ‘인’을 말한 공자, ‘자비’를 이야기한 석가, ‘지혜’를 말한 소크라테스 등.
수천 년 전의 이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 시대에도 그러한 ‘성인’의 행적들이 충분히 가치롭게 여겨지고, 존중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쇼토쿠 태자 사랑’ 역시, ‘성인’에 대한 가치성에 공감하는 것에 다름없다.
과연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
일찍이 이황 선생도 이야기하였듯, 누구는 성인이 되고, 누구는 범인이 되는 것인가?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성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학문적 탐구를 넘어서 궁극적인 자기완성의 지향 향(志向鄕)으로 삼았던 흔적들은 무수히 많다.
중국에서 들여온 성리학적 심성론을 발전시켜 성인이 되기 위한 공부 방법, 수양론에 많은 업적을 남긴 이황 선생도 그분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천지와 크기를 같이 한다”
(<퇴계 전서>권 48 靜庵趙先生行狀)
라고 하며, 참이 점점 쌓이면 마음은 어느덧 천리와 하나 되는 경지에 이르는데 그것이 천인합일(天人合一)이며 성인이 되는 방법이라 하였다.
또
“성인이라 하면, 자기의 마음이 없고 인간 완성의 진리가 된 자”
( <이 세상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 가서 살자>)
라고 말한 우명(兎明) 선생은, 허상의 인간 마음을 없애어 성인이 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매일매일 정신없이 살아가는 인생사에 있어, 어느 날 펼쳐보는 ‘성인’의 이야기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나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반추해 보게 한다.
이제까지 세상 사람들을 위해 위대한 삶을 살다 간 인류 역사상의 성인들 같이는 못 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1400년 전을 살았던 ‘성인’ 쇼토쿠 태자는 40대에 죽었는데도 아직도 일본인들의 마음을 자랑스럽게 적셔주는데, 50줄을 살아가는 나는 이웃에게라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 하니 말이다.
*사진;쇼토쿠 태자 상(宮內廳 侍從職 소장);백제의 아좌(阿佐) 왕자가 일본에 와서 그렸다고 전해진다.
이 초상은 1930년(昭和5) 일본 지폐에 채용되었고(백 엔;百円), 그 뒤 천 엔(千円), 오천 엔(五千円), 1만 엔(一万円;昭和33年)짜리에 이르기까지 고액 지폐의 초상으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