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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Jun 05. 2020

일본인들은 왜 ‘정직’을 추구해 왔는가

                        

 일본에서는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믿고 사는 신뢰관계의 형성이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에도시대로부터 발달해 온 상업 문화의 유풍(遺風) 일 수도 있지만, 그 기본에는 그들이 오랜 역사적 시간 속에서 중시해 온 ‘정직(正直)’의 관념이 작용해서이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된다. 


 일본의 역사 속에서  ‘정직’의 마음이 추구되었다는 흔적은 이미 8세기, 즉 일본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한 시절부터 나타난다. 그것도 정사(正史)인 <속일본기(続日本紀)> 의 천황 즉위 선명(宣命) 기록을 통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천황들은 즉위할 때마다 관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마음을 가질 것을 지침으로 내리곤 하였다.  


‘밝고 깨끗한 마음(明淨心)’   

‘깨끗하고 밝고 바르고 곧은 마음(清明正直心)’

‘속이는 마음 없이 진실하고 분명한 성의(諂い欺く心なく, 忠に赤き誠をもちて)’

‘깨끗하고 밝은 마음, 정직한 말(清明心, 正直言)’

‘청직심(清直心), 진실하고 밝은 성의(忠明之誠)’  


 9세기 이후 헤이안 시대가 되어도 여전히 제 천황들의 즉위 선명을 통해 신하에 대한 ‘정직지심(正直之心)’은 강조되었다.

 이후 중세의 무로마치 시대에는 이세신궁(伊勢神宮)의 교의(教義)로서 정직의 관념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中村元 <日本人の思惟方法>). 남북조 시대의 귀족이자 무장이면서,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를 저술한 기타바타케 치카후사(北畠親房)는 천황가의 상징물인 ‘삼종(三種)의 신기(神器)’(고래의 천황의 상징물로써 내려온 3종의 보물)인 동경(鏡), 검(剣), 곡옥(曲玉)에 내포된 의미를 각각 ‘정직•자비•지혜’의 덕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청명심(淸明心), 정직의 관념에 대해, 그 기원을 일본 신화 속의 윤리사상으로부터 설명하기도 하고(和辻哲郎), 혹은 본래 ‘불교로부터 받아들인 것이지만 범일본적으로 중시된 것’(中村元)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정치, 종교, 사회 어느 쪽을 통해서든 일본인들에게 있어 오랜 시간을 거쳐 중요한 관념으로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왔음은 분명하다. 


일본의 유명한 철학자 나카무라 하지메 씨는, ‘정직’이 일본인의 일반 도덕 가운데 중심적 도덕이었다고 지적한 뒤, 


“일본인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고 폐쇄적인 인간 결합조직을 형성하는 것을 애호하여, 그것이 소속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 전면적 신뢰를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이러한 도덕적 자각이 나타났을 것이다”라고 분석하기도 하였다.


 그런 면에서 생각되는 것은 일본이 중세 이래로 소손(惣村)이나 무라(村)와 같은 자치조직이 발달하였다는 점이다. 즉 각 조직 내의 의사결정과 법규약 결정은 물론 그 위반자에 대한 처벌까지도 자치적으로 행해온 긴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직 내 위반자에 대해서 자신들의 손으로 처벌하는 중세의 ‘지게켄단(地下檢斷)’이나 근세의 ‘무라하치부(村八分';촌민 간의 절교(말을 걸지 않음) 처분. 지금까지도 그 유습이 잔존)’와 같은 촌법(村法)의 존재 등은, 자신들의 생존을 자신들 스스로가 지킬 수밖에 없었던 700년간의 사무라이 시대의 유제이기도 하다. 


이런 긴 세월을 통해 강고해진 그들만의 세계의 룰(rule) ‘무라 오키테(村掟)’가 다른 어떤 외부세계와의 관계보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던 것이다. 자신이 소속된 조직 안의 관계가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었던 만큼, 그 속에서의 신뢰와 정직은 중요한 기본이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세월 동안 일본인들은 '정직'의 마음을 강조하며, 그들 내부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인간관계를 규제해 왔다.   

그러나 그러다 보니 외부세계와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는 그 중요성을 자각하는 힘이 미약했던 것 같다.  일본인들이 “외부세계와의 일관된 보편적 모럴(moral)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는 평판을 듣는 것은 그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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