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거리를 다니다보면, 언제 어디서고 귀에 들리는 말이 있다. ‘스미마셍(すみません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아리카토고자이마스(有難うございます.고맙습니다)’‘도우모(どうも.고맙습니다)’, 이런 말들이다. 사람사이의 모든 관계 속에서, 일본인들은 늘상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도 일본에서 살 적에는 그 분위기 속에서 계속 이런 표현들을 하며 살았다. 이런 말을 자주 하다 보니 어느 틈인가 내 자세도 점점 앞으로 기울어져갔다.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숙이며 ‘가시고마루(畏まる. 삼가다)’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여행을 다녀온 일본인 대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를 화장실에서 들은 적이 있다.
요지는, 명동거리에서 한국인들이 똑같은 청바지 스타일에 서로 팔짱을 끼거나, 당당히 팔을 저치며 걷는 모습이,“코와이요네(こわいよね, 무섭네요)” 라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남과 부딪히게 될까봐, 또 혹여라도 ‘메이와쿠(迷惑,폐)’를 끼치게 될까봐 조심조심 움직이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는 일본인들 눈에 비친 한국인들의 활보는, 몹시 거칠고 무섭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서로 어깨를 부딪치거나 몸을 스쳐도 사과하는 말 잘 안하고, 또 잘 못 듣고 살아온 한국인 나였다.
그러나 일본생활 10년 뒤 귀국했을 때에는 한국인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화가 났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이, 참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 모습이 바로 나였는데 말이다.
습관이 참 무섭다. 그러고 보니 일본생활에서 익숙해진 또 하나의 말이 ‘코와이(무섭다)’이다.
‘스미마셍(済みません)’이란 말은, 동사 스무(済む, 끝나다, 해결되다)’에서 온 말이다. 즉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가 ‘미안합니다’이면서 동시에 ‘고맙습니다’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여러 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 당신과 나 사이의 빚(은혜갚음) 관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역사기록을 보면 일본인들은 고대 시절 이후로 빚갚음, 채무관계에 민감한 사회적 삶을 형성해 왔다. 이러한 관념의 형성에 불교가 한몫 톡톡히 했다. 일본사회에 불교문화가 들어가면서 많은 절이 생겨났다. 당시의 절은 토지를 소유하며, 춘궁기에 볍씨를 빌려주었다가 가을에 이자와 더불어 돌려받는 스이코(出擧)를 행하여 축부(畜富)하는 대표적 영리기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절의 물건을 빌려 썼다가 갚지 않으면 소로 태어난다는 등의 응보(應報)사상도 강조되며 퍼져나갔다.
중세이후 무가(武家)사회가 되었을 때에는, 무사계급들 사이에서는 장군의 직속부하 고케닌(御家人)에 대한 토지수여(고온御恩)와, 이에 대한 은혜갚음(호코奉公)이라는 쌍무적 의리 관계의 이념이 뿌리를 내렸다. 더불어 사회의 하층부에서는 경제력을 형성하게 된 상인세력, 상업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채무관계, 빚갚음 강조의 문화가 사회전체의 이념으로 강고히 형성되었다. 인간관계의 형성과 유지에 있어 항시 ‘빚(은혜)’를 의식하고, 이것을 제대로 갚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관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한 가치관은 현대 일본사회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해마다 오쇼가츠(お正月, 정월명절), 오츄겐(お中元,추석명절)이 되면 은혜 입은 분들에게 일일이 엽서, 선물 보내며 인사치레하는 것은 인간관계 유지에 있어 중요하다. 여행이라도, 출장이라도 다녀오게 되면 같은 조직의 사람들에게 뭐라도 오마야게(お土産) 하나씩 사들고 와서 ‘덕분에(お陰様で)’를 감사해야만이 자연스런 사람 짓이 된다. ‘스미마셍(済みません)’,‘아리가토고자이마스’를 서로 간에 끊임없이 의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무튼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보이는 모습을 비교하자면, 나름대로의 역사적 배경과 경위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하겠다. 그러나 늘 ‘스미마셍’,‘아리가토고자이마스’를 하려다보면, 우선 내 자세가 낮아지게 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일치일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고자 하는 진심이 먼저 있고 나서, 참 겸손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