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No를 잘 말하지 않는다, 속을 알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일본인을 이해하는데 어렵고 서투른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하나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이 일본의 국시 ‘와(和)’에 대해서이다. 우리가 자칫 잘못 알기 쉬우면서도, 또 일본인을 가장 잘 이해해 볼 수 있는 중요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 속에서 이 ‘와’의 등장은 제법 이른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르다 함은, 일본이 처음으로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어 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제시된 이념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기록한 사료인 <일본서기>가 720년 편찬의 것이니, 8세기 이념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 사료 기록을 그대로 따른다면. 604년 제정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히 일본 대표 이념이라 할 만하다. 그 긴 시간 동안 그 의미가 재음미되고 재고(再考)되면서 존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가치성은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게 된다.
‘와’는 일본 역사상 최초의 헌법이라 불리는 쇼토쿠 태자의 헌법 17조 중 제1조로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다.
“와( 和)를 귀하게 여기고, 거역함이 없음을 중요시하라.”
즉 ‘와’란 구체적으로 ‘거역함이 없’는 것, 정해진 기존 질서에 대한 순종과 복종의 논리였다. 거역함이 없어야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조화와 평화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먼 역사시대 이래로 일본인들이 선택하고, 존중하며 살려온 가치관이며, 현재의 일본인들 또한 그들 스스로 가장 타당하고 적합하다고 제시하는 ‘일본적 이념’인 것이다. 일본인들이 흔히 그들 역사에서 자랑하는, "(역성) 혁명이 없었다", "만세일계이다"의 주장과 통한다.
물론 애초에 이런 이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의 역사 환경적 조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일본 고대국가의 성립 과정 속에 기존 세력과 새로운 도래 세력, 기존의 신(神) 신앙과 유입 불교의 만남이라는 시대적 정황이 있었다. 국가건설에 힘을 모아야 하는 중대한 시기에 그 출자를 달리하는 사람들, 색깔이 달리 하는 사상들의 존립을 인정하고, 그들의 공존과 조화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속에서 구성원 사이의 질서와 순종을 강조하는 조화의 이데올로기로서 쇼토쿠 태자의 ‘와’의 이데올로기는 탄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일본 열도에서 삶을 영위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생각은, 새로운 질서의 창조보다는,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공존하는 것에 주안점이 놓였다.
그리고 그러한 비통합적 공존의 분위기가 그 뒤로도 일본 사회의 인식으로 자연스럽게 뿌리내려져 갔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한 분위기를 뛰어넘을 강력하고 초월적인 이념은 등장하지 못한 채, 이 같은 조화와 순종의 ‘와(和)’ 이념이 지속적인 가치성을 발휘해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일본 사회의 곳곳 처처에는 그 같은 ‘와(和)’라는 용어가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 ‘和’는 일본의 연호에도 가장 많이 붙는 글자 중 하나다. 화동(和銅), 승화(承和), 응화(應和), 관화(寬和), 장화(長和), 강화(康和), 양화(養和), 정화(正和), 홍화(弘和), 천화(天和), 명화(明和), 향화(享和), 소화(昭和) 등의 예가 그러하다. 이에 ‘와(和)’란 그 자체가 일본을 가리키는 관념이 되어 있다. ‘와쇼크(和食)’란 일본식 식사, ‘와후(和風)’란 일본식 분위기를 가리키는 말로 의심할 여지도 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和’의 이념을 이해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이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답을 찾아내는 일원적인 통합, 타자와의 진정한 하나 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의 유명한 정치사상사 연구자 마루야마 마사오(1914 ー96)가 “문제는 이질적인 사상이 정말로 교통하지 않고서 그저 공간적으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라고 한 것은 바로 그러한 면에서의 지적이라 생각된다. 다시 말해 이는 오히려 서로의 불가침을 암묵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의식에 가깝다.
이러한 '와(和)'의 이념을 일본인들은 천삼, 사백 년의 세월에 걸쳐 자신들의 세계 안에서 견지하여 왔음이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 한국인들은 "정이 많다", "남에게 간섭이 심하다" 등의 평가를 듣기도 한다. 자기 생각에 이게 아니다 싶은 것에는 화를 내어 표현하거나, 여차하면 적극 행동으로 나서기도 한다. 남에게 간섭하길 꺼리고, 자기주장 잘 안 하는 일본인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속을 알 수 없는 일본인’과 ‘속을 솔직히 드러내야 되는 한국인’ 사이의 표현의 간극은 제법 되는 듯싶다. 두 나라 사람들이 과거 서로 다른 역사적 환경, 상황 속에서 삶을 영위해 온 표식이라 이해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사진은 <일본서기> 헌법17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