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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Aug 04. 2020

한일 갈등의 사연들
              

(유학기4)

지금 생각해 보아도, 일본에서의 학업 생활이 그리 녹녹한 편은 아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해야 할 과제를 붙들고 하루 종일 도서관 가서 씨름하며 세월을 보냈다. 정작 더 힘들었던 것은 토요일, 일요일이다. 도서관 문도 안 여니, 갈 데도 없고 난감했다. 

숙소의 좁은 4첩 다다미 방은 답답하기만 하였고, 주말에까지 머리에 뭔가 집어넣은 것은 무리가 되었다. 빠듯한 장학금으로 여유가 없으니 영화를 보러 가기도, 여행을 가기도 쉽지 않았다. 

“일본은 움직이면 돈이다”라는 말처럼 교통비가 만만치 않아 꼼짝을 못했다.


 그러다 토요일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겼다. 치바현까지 1시간 이상 기차를 타고 가야 하기는 했지만, 일본인 선생님 부부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었다. 앞에 했던 유학생이 바통 터치해 준 덕을 본 것이었다. 한국에 대해 나보다도 관심이 더 많은 듯하고, 더 많이 공부하는 일본인 선생님 부부가 따듯이 대해 주셨다. 


기차역에서 내려 그 집까지 걸어가는 거리는 한량없이 멀게 만 느껴졌지만,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이 분들은 한국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분들이었지만, 그 딸이 캐나다에서 만난 흑인을 남자 친구라고 데려왔을 때 “한국인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쇼크가 되고, 심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했지만, 당시 일본의 시외지역에서 보편적으로 한국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 그런 것을 배경으로 한 말이었기 때문에 내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초등학교 교사인 사모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일본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적송(赤松)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서 한반도로부터 전해진 것이라고 (한국 사람들이) 말하지만, 당시 일본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적송이 자생하였음이 밝혀졌다.” 


 한국의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과 일본의 목조 미륵보살 반가상은 너무나도 흡사하여,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한국에서는 이해하고 있다. 일본인 사모님의 말을 듣고, 나도 한국에 와서 조각가이신 한 교수님께 여쭤 보았는데, 그 교수님의 판단으로는 같은 장인(조각가)에 의한 작품일 가능성이 농후하다”였다.

 


 

일본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좌상 높이 84cm)

                                             

한국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좌상 높이 94cm)




아무튼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현재 일본의 국보 1호인 데다, 일본에서는 이른바 영목(靈木), 즉 이어 붙인 것이 아니고, 하나의 나무로 통째로 조각한 일목조(一木造) 기법의 우수한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것을 한반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일본 사람들이 제법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의 초등학교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이러한 점들을 알려주며“미륵보살 반가상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의 것이다.”라고 가르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중국) 남양 양식의 아카익(고풍스러운) 스마일(archaic smile)"이라 기술하고 있다.





 일본의 나라현에서 발굴된 7세기의 다카마츠즈카(高松塚) 고분은, 일본의 다른 고분들과 달리, 장식고분이라는 점에서 유명하다. 색동 주름치마의 부인 들의 모습 등, 고구려 수산리 고분(5세기 후반) 안의 벽화와 유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고분을 만들 정도의 위세를 가지고 군림하였던 흔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교과서에서는 "당나라 영태 공주 묘의 궁녀도와 비슷하다"라는 기술이 보인다.

    일본 다카마츠즈카 고분 여인상(7세기 말)


                  고구려 수산리 고분 벽화 부인상(5세기 후반)



당나라 영태공주 묘 여성상(8세기 초)



언젠가 일본의 어느 지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다카마츠즈카 고분에 일본의 초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갔단다. 거기에 또 한 무리의 한국인 아줌마, 아저씨들이 고분 안을 둘러보며, 다카마츠즈카 고분은  "우리(고구려) 것"이라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한 초등학생이 통역에게 물었고, 그 내용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초등학생이 이렇게 질문했단다. 이 고분의 주인은 누구의 조상?


 다카마츠즈카 고분은 누구의 조상의 이야기인가

그 고분의 피장자는 일본 땅에서 죽었으니 그 후손들은 일본 땅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 후손들은 일본인이 되었을 거다. 그렇다면 다카마츠즈카 고분의 주인공은 일본인의 선조가 되는 것인가.

 갑자기 미국 신대륙으로 건너갔던 영국인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미국 땅에 정착해 미국인의 선조를 이루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국인 선조의 이야기인가, 미국인 선조의 이야기인가.

 

고분 축조 당시, 한 국가의 소속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얼마나 뚜렷했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한반도에서는 신라, 백제, 고구려 간의 각축전을 벌이던 역사적 상황이 있었으니, 나름대로 국가별 영역 민들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잇는 일본 열도의 고분시대에는 선주민들에 이어 많은 유입 민들의 혼재가 일어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일본 열도에서 후손을 남겼고, 그 후손들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일본인이 되었다. 


 나도 그렇지만, 일본에 가서 그 옛적에 한반도로부터 건너왔던 사람들의 자취를 보고 느끼는 것은 나름대로 감회 깊은 일인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을 지금의 입장에서 한국의 것, 일본의 것 하고 나누며, 말하고 생각하는 것에는 유의해야 함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사람, 즉 인류의 역사는 국가라는 틀을 넘어선, 보다 더 광대하고, 보다 더 근원적인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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