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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Aug 14. 2020

‘동아시아 역사’에 한반도가 없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일본의 중고등 역사 교과서 속에 한반도와의 교류의 역사가 미미한 수준으로밖에 기술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더불어 일본인 학자들이 말하는 ‘동아시아 세계’ 속에 한반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또 아는지 모르겠다.      


 이미 10세기경부터 일본의 아시아관 속에 한반도가 빠지기 시작했다고 일본의 연구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내가 잘 인용하는 <곤쟈크모노카타리슈>(11-12초 성립)의 편목에도, ‘인도, 중국, 일본’ 편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본래 불교 설화집으로 편성된 것이라 볼 때, 일본이 불교를 백제로부터 받아들였다는 것이 <일본서기>에 분명한데도 말이다. 이보다 앞선 불교 설화집 <일본 영이기>(9세기 초 성립)의 서두를 보면


 “내경(內經, 불경), 외서(外書, 한문 서적, 주로 유교의 서책)가 모두 백제로부터 왔다”


라고 하면서도, 결국


 “옛날 한지(漢地, 당)에서는 <명보기(冥報記)>를 만들고, 대당국(大唐國)에서는 <반약험기(般若驗記)>를 만들었다. 어찌 다른 나라의 기록만 삼가 보고, 자국의 기이한 일은 믿어 두려워하지 않으랴


라 하며, 당나라를 의식하여 이 같은 일본판 불교 영험담, 즉 <일본 영이기>를 저술함을 밝히고 있다. 


 정사(正史)의 기록을 살펴보게 되면 사정은 좀 다르다. 

일본 최초의 정사인 <일본서기>(720년 완성) 속에는 백제, 신라, 고구려와의 교류가, <속일본기>이후의 일본 정사 속에는 통일신라, 발해와의 빈번한 사절 교류의 기록이 비교적 상세하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훨씬 사료적 풍부함이 있다. 


그러나 일본 조정이 섭관(摂関)기, 원정(院政)기를 거치며 대외교류 추진의 의욕이 쇠퇴하고, 이른바 ‘신라 해적’의 문제가 표면 위로 떠오르는 등의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한반도와의 정식교류는 단절된다. 


그 후 사무라이 시대에는 막부의 묵인 아닌 묵인 아래, 쓰시마(対馬)가 중개지가 되어 고려의 경주, 금주의 동남해도부서와의 사이에서, 그리고 조선왕이 공인하는 도서(圖書, 정식통교자임을 증명하는 동인) 무역과 사무역 등이 막부, 다이묘(大名), 호족, 상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행해진 교류의 역사가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몽골 침입, 왜구 문제, 왜란 발발 등의 사연으로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도 맺을 수밖에 없었던, 교류를 하고 싶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었던 물리적 거리와 그 필요성에 의해, 역사적 운명 속에서 지속된 인연이었던 것이다.       


그런 한반도와의 역사를 일본의 역사교과서 등에서는 제대로 기술하지 않는다.

한반도로부터의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의 고대 유물,유적들에 대해서도 일본의 역사책에는, ‘적극적인 대륙과의 교류의 영향’을 강조하며, 그리스, 로마, 인도, 중국 등과의 관련성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고대사 학계가 유럽의 고대사 학계와 교류 연구를 추진하는 분위기가 있어 왔던 것도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일본의 동양사학자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씨가 ‘6-8세기의 동아시아’(1962년)라는 논문을 통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책봉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전개된 역사적 세계를 ‘동아시아 세계’라고 부른 뒤부터, 이러한 동아시아 세계론은 일본 학계의 보통명사가 되어버렸다. 


일본의 역사기술 속 ‘세계’란, 근대 이전에 있어서는 주로 수, 당, 송, 원, 명과 같은 중국의 나라를 가리키는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16세기 이후의 난방진(南蠻人;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이나 코모진(紅毛人; 영국, 네덜란드) 등에 의한 영향이 있었고, 근대 이후에는 주로 서구 열강이 있을 뿐이다. 그 사이에서 무엇을 가져왔느냐, 어떤 영향을 받았느냐 기술하는 것이 그 주된 시점을 이룬다. 

즉 일본인이 바라보는 ‘세계’란 전근대 시기의 중국과, 중국을 대신하는 서양이 있을 뿐이었다. 가장 옆에서, 가장 지속적인 관계를 가졌을 한반도는 그들의 주된 역사적 시선 속에서 빠져 있다.


 그런고로,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한반도와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답은 간단히 돌아온다. 

“와칸나이(わかんない. 모른다)”이다.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인지라 한국인들이 자꾸 역사 이야기를 들고 나오면, '모르는' 고로, 이해를 못하는 것이고, 이상히 여기는 것이다. 맹목적인 주장들에 함몰되기 쉬운 상태이다.


 역사는, 과거 그 자체가 아니고, 현재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로 취사선택된 과거이다. 즉 역사는 역사관에 입각한 역사기술의 문제이며, 역사교육의 문제가 된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한국과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잘 보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 관련해서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떠한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인가.  




세상은 '아는 자'가 선도해 가는 것이 아닐까. 상대를 모르면서 상대와의 관계를 리드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잘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결국 상대로부터 부러움을 살 수도 있다.


상대의 모습을 거울 삼아,

우리의 의식과 실력을 크게 키워가는 신나는 노력을 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성숙된 의식을 발휘하는 나라로서 국제적 위상을 높여 갈 수 있는 시절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일본도, 중국이나 여타의 나라들 못지 않게, 한국과 관계했던 역사를 그들 스스로 중하게 여겨 그들의 교과서에 제대로 기술하게 되지는 않을까. 

과거는 현재 인의 마음에 따라 해석되고 기술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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