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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Jun 05. 2020

예나 지금이나-
"자리가 필요해"

   

예나 지금이나, '자리'를 얻기 위해 애태우던 사연들이 있다. 


10세기 말 경, 당시 일본 최고의 지식인 관리였던 문장 박사(文章博士) 오에노 마사히라(大江匡衡)는 다음과 같은 모우시부미(申文)를 조정에 올린다.


 “오와리 슈(尾張守. 슈는 고쿠시 1등관)에 임명받고 싶습니다. 나보다 후배들이 8명이나 고쿠시(国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전혀 은혜를 받고 있지 못합니다. 나의 집은 낡아 빠져서 비가 샙니다. 노모가 불쌍합니다. 도대체 지금의 세상은 틀려먹었습니다. 예전에는 학문을 중시하고 학자를 고쿠시(国司)로 임명했는데, 요즘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러면 학문에 뜻을 둔 젊은이들도 희망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


또 명문가 다이라노 가네모리(平兼盛)는 다음과 같은 모우시부미를 조정에 올렸다.


나는 올해까지 열심히 조정에 봉사(御奉公)해 왔지만 하나도 보상받지 못하고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면 부자(親子), 형제가 모두 고쿠시(国司)에 임명받은 자도 있습니다. 한번 고쿠시가 되면 재산도 생기고 즐거운 것도 누릴 수 있습니다. 몇 개국의 고쿠시를 역임하게 되면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생활에 지치고, 슬퍼서 살이 빠지는 기분입니다.(이상<本朝文粋>)    


이렇듯 고쿠시의 자리를 얻기 위해 지식인들이  하소연을 하던 모습은 곤쟈크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에서도 찾아진다.   


24-30, 후지와라 다메토키(藤原為時), 시를 지어 에치젠 슈(越前守)에 임명된 이야기      

“옛적에 후지와라 다메토키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치조인(一条院) 시절, 시키부 죠(式部丞, 丞는 3등관)의 공로로 인해 즈료(受領, 고쿠시)에 임명받고 싶다고 신청했지만, 지모쿠(除目; 인사 결정) 때, 자리가 빈 구니(国)가 없어서 되지 못하였다. 그 뒤 이 일을 한탄하여 다음 해…… 모우시부미(申文)를 조정의 나이지(内侍) 편으로 올렸다. 그 모우시부미(申文)에는,


'가난해서 겨울밤의 추위를 견디며 학문을 하고 있자니, 눈물은 피눈물이 되어 소매를 적시고, 지모쿠(除目)에 뽑히지 못한 다음날 아침 하늘은 푸르고 맑아 눈에 물드는데'     


……관파쿠도노(関白殿; 미치나가道長)는 이 문장에 감탄하여, 도노(殿)의 유모의 아들인 후지와라 구니모리(藤原国盛)라는 사람이 임용될 에치젠 슈(越前守)를 그만두게 하고, 갑자기 다메토키(為時)를 임명하였다.……”

(구니모리는 이 일이 원인으로 병에 걸려, 그 해 가을에 하리마 슈(播磨守)가 되었지만 병사하고 말았다<속왕생전(続往生伝)>)     


고쿠시 자리를 얻기 위해 - 그 무엇보다도 '생계해결'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이렇게 애절한  사연을 역사에 남겼다. 당대 제아무리 최고의 지식인이라 하더라도 소용없다. 그저 자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재산도 생기고 즐거운 것도 누릴 수 있으니'말이다. 


이렇듯 '자리'를 얻기 위한 사투의 현장은 중앙 조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헤이안 중기의 손꼽히는 지식인 후지와라 사네스케(藤原実資)의 일기<쇼유키(小右記)>를 들여다 보아도 그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나(実資)를 제치고 마사노부(誠信)를 산기(参議)로 임명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이래서는 정말 도리(道理)도 뭐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비 우대신(右大臣)의 ‘눈물’이나 ‘위협’으로 임관(任官)이 이루어지다니, ‘조의(朝議)가 이미 가볍다’고 천하의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또 사람들 이야기로는 우대신은 나(実資)에 대해 여러모로 안좋게 말한다고 하던데, 이런 일을 적는다면 끝도 없다. ”     


 당시 많은 귀족들이 ‘임관(任官)’을 위해 선물 보따리를 싸들고 인사 다니던 모습도 생생하다(<쇼유키(小右記)>, <미도관파쿠키(御堂関白記)> 등). 또 정사(正史)의 기록 속에는 '집안 때문에', 혹은 '천황의 총애를 받아서', 혹은 '사람을 잘 사귀어서' 관리가 되었음을 혹평하는 기사들도 제법 수를 헤아린다. 


눈물과 위협의 하소연을 하고, 선물과 연고로라도 자리를 얻으려 혈안이 되었던 이들. 이는 관직을 먹고 살기 위한 삶의 방편으로, 또한 자신의 즐거움과 영화를 위한 도구로밖에 인식하지 못했던 시절의 지식인들의 모습이었다.       




이런 것을 읽다 보면 오늘날의 지식인- 멀리 찾을 것도 없다- 나 자신에게 물어보게 된다. 혹시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냐고…….

자리를 얻는 것보다, 그 자리에 있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무슨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으며, 실제 어떻게 하고 있느냐 일 것이다.


티슈 한 장이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그 자리는, 세상에 쓸모 있는 일을 하라고 주어진 자리일 것이다. 부단한 노력과 성의가 그 자리를 가치롭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천 년 전의 지식인들의 모습에 지금의 나를 비춰보며, 그래도 그들보다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기 위한 노력에 마음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         


     * 사진은 사도(佐渡) 고쿠분지 아토( 国分寺跡) 출토 역인(관리)상(役人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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