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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Jun 05. 2020

일본인들에게 중요한 ‘하지(恥, 부끄러움)’란 무엇인가

(곤쟈크모노가타리슈1)

     


일본인의 정신적 특질의 하나로  ‘하지(恥)의 문화’가 자주 언급되어지곤 한다.

전쟁 중의 적대국 일본에 대한 연구로 출발한  <국화와 칼>에서 루스 베네딕트 여사도 지적하였듯이 말이다.   ‘하지(恥)’란 무엇인가?


 ‘하지(恥)’에  관련된 일본인의 정서를 역사 기록 속에서  찾아보면, 그 연원은 제법 오래된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 최초의 불교 설화집 <일본 영이기(日本靈異記)>(9세기 초 성립)를 들여다보더라도 쉽게 그러한 면이 찾아진다. 이 설화집 속에는 ‘하지’에 관련하여, 당시 세간의 정서인 ‘부끄러움’, ‘부끄러움을 당하는(주는)’ 이야기가 다수 등장한다. 즉 이때의 부끄러움이란, 참회나 자기반성적 성찰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로 ‘창피를 당하다(주다)’의 이야기들인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빚을 갚지 않은 일은 부끄러운 일이다. 반드시 후세의 업보가 있다”(中30)와 같이, 당시 부채 관계의 의무를 강조하기 위한 부끄러움, 또는 관음동상에 매달려 자신의 가난한 처지에 대해  “부끄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빌어서 기적의 응답을 받은 이야기(中34)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렇듯 <영이기>에 보이는 대부분의 ‘하지’ 즉 부끄러움의 이야기는 당시의 인간관계,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부끄럼―즉 창피를 당하게 되는 사태, 혹은 창피를 당하는 것에 몹시 마음을 쓰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룬다.     


<영이기>의 다음 시기를 잇는 <곤쟈크모노카타리슈>(11세기-12세기 초)를 보면 ‘부끄러움(창피)’를 강조하는 인식이 더욱더 확대되었음을 볼 수 있다. 많은 이야기가 “부끄럼(창피)을 당했다”는 요지의 내용들이다. 예컨대 이런 내용들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웃음거리로 삼았다. 그러므로 집안 신분이 낮은 자는 역시 모르고 있다. ……초대도 되지 않았는데 참석해서 이런 부끄러움(창피)을 당하고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어, 후세까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고 전해져 온다”(28-3), 

“그대들에게 이렇게 (세금을 내라고) 재촉받아 부끄러움(창피)을 당하게 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이는 나 자신 부끄러움(창피)을 당할만한 업보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울길……”(28-5), 

“나에게 창피를 주는 일은 불가능할 텐데” (28-31), “별 볼일 없는 일에 이런 창피를 당하다니”(28-35), “심한 부끄럼(창피)을 당할 것 같다고 말하고”(28-36), “신분이 천한 자 가운데에도 이처럼 부끄러움을 아는 자가 있다”(29-29)     


주로 인간적,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요구된 입장과 괴리가 생겼을 때 이를 부끄러움(창피)이라 여기거나, 이러한 부끄러움(창피)의 사태가 야기되는 것에 대한 강한 심리적 부담감도 표현되고 있다. 무언가 잘못한 사람에게 다른 처치를 내리는 것보다도 “단지 창피를 당하게 하려고 (처치)한 것은, 참으로 현명한 일이다”(28-11)라는 세간의 인식도 보인다. 창피를 당하는 것이, 당시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중대한 자격상실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인간의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까지도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하는 것이였다(28-17).     


 이와 같이 집단내 인간관계의 유지, 또는 당시 사회질서 유지에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를, ‘부끄러움(창피)’이라는 잣대로 평가하여, 이를 주의, 경계시키려는 의식이 고래로부터 일본 사회에 발달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부끄럼을 당하는’ 일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였는지 짐작해 보게 된다.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부끄러움(창피)’을 의식적, 무의식으로 강조하는 이데올로기 속에 살아온 것이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지적할 수 있는 점은, 부끄러움(창피)을 당했을 때의 주된 대처법으로 두드러진 것은 ‘도망가 버리는 것’(<곤쟈크>28-24,27 등)이었다는 점이다. 적극적인 해명이나 충돌보다는 피하고 도망가는 소극적 방법인 셈이다. 이러한 점은 부끄러움(창피)이라는 상황 앞에 대항할 수 없는 중대한 가치적 무게감이 실려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 그 상황을 피해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식의 암묵적 분위기도 있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오히려 대항해서는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부끄럼(창피)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가 될 뿐이라고 강조되어 있다(<곤쟈크>28-3 등). 


 이상과 같이 일본인에게 있어 '하지', 즉 부끄러움(창피)의 문제는, 자신이 속한 집단 사회 내부의 요구와 질서에 부응하며 자신의 존립을 지켜나가기 위한 생존의 논리였다. 자신이 부끄러운(창피한) 존재가 되면,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의 존립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니,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강하게 통제하며 관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속담 중에 ‘다비노 하지와 가키스테(旅の恥じはかきすて)’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떠나 여행지에서 저지른 실수, 창피는 그곳에 버려두고 떠난다는 뜻이다. 여행지는 그곳에 다시 가지 않을 것이므로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쓰인다. 부끄럼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자신을 통제해야만 하는 거주지를 떠나면, 그 해방감으로 오히려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의 관념이 일본인들에게 주는 중압감의 무게와 그 왜곡의 여파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이같이 부끄러움(창피)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분위기, 피해버리는 소극적 대처법 등이 조성된 사회 안에서는, 인간관계상의 적극적인 대항이나 충돌은 비교적 적었을 것이다. 이것이 정적이고 평화로워 보이는 일본사회의 밑바닥에 흐르는 기본 정서의 하나였던 셈이다.

 

아쉬운 것은 일본인들의 그 ‘하지’ 관념이, 자기 방어나 소속집단의 질서 유지 정도에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좀 더 나아가 여타의 외부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려는 '하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쇼와(昭和) 천황의 전쟁책임을 묻는 국제여론이 높아졌을 때, 일본에서 유행한 슬로건이 ‘1억 총 참회(一億総懺悔)’였다. 전쟁책임을 1억 명의 일본인이 각각 1억 분의 1씩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1억 분의 1이란 제로에 가깝다. 결국 일본인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논리였다. 


이것은 ‘참회’가 아니다. 

참회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 잘못된 점을 깨닫고 진실로 반성하여, 다시는 그런 잘못이 없도록 하는 것까지가 참회가 될 것이다. 참회가 무엇인지 일본인들이 모르는 것은, 그들이 인간관계 속에서 그토록 중시해 온 ‘하지(부끄러움, 창피)’의 의미가 가진 한계성으로부터 기인한 것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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