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노 나가아키라(鴨長明;1155ー1216년, 초메이라고도 함)의 수필<방장기(方丈記)>(1212년 3월 말 편찬)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는 일본 헤이안 말기로부터 가마쿠라 초기에 이르는 변혁기의 시절을 살았던 인물이다.
어지러웠던 시절만큼이나 어지러웠던 인간의 마음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만일 신분이 비천하면서 권문(権門) 옆에 살고 있는 자는, 마음속 깊이 기쁜 일이 있어도 마음껏 즐길 수가 없다. 슬픈 일이 있을 때에도 소리 내어 울 수가 없고, 일거수일투족 무엇을 하든지 벌벌 떨고, 이는 마치 참새가 매 둥지 근처에 다가갔을 때와 같은 것이다.
만일 빈곤한 자가 부잣집 옆에 살면 아침저녁으로 자신의 누추한 모습이 부끄럽고, 자기 집을 출입하는 데에도 옆집 눈치를 보며 움츠러 들게 된다. 처자나 종복이 부자를 부러워하는 것을 보며, 또 부자들이 이쪽을 무시하는 태도를 들으며 마음이 동요하고, 조금도 편치가 않다.
집들이 밀집한 곳에 살면 화재가 있을 때 피할 수가 없다. 만일 변두리에 살게 되면 교토(京都)와의 왕복이 큰일이고, 도적에 당하는 되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또 권세 있는 자는 탐욕적이고, 홀로인 자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재산이 있으면 그것을 지키려고 두려움이 많고, 빈곤하면 그 한(恨)이 애절하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면 자주성을 잃게 되고, 사람을 돕게 되면 마음이 은애(恩愛)에 얽매이게 된다.
세상에 따르는 것은 자신이 괴롭고, 따르지 않으면 미치광이처럼 보이게 된다.
어떤 곳에서 살아야 하고, 어떻게 하면 잠시라도 이 몸을 쉬게 하고, 잠시라도 마음을 쉬게 할 수 있을까.”
그는 오랫동안 조모의 집에 의탁해 살다가 30살이 넘어 간신히 작은 집을 마련해 살았다.
시모가모(下賀茂) 신사의 네기(禰宜;신사의 직. 간누시(神主)와 하후리(祝)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던 그는, 네기(禰宜) 직을 바라다 이루지 못하자, 나이 50이 되어 출가해 버린다.
오하라야마(大原山) 산중에서 5년간 칩거하였다. 그 후 가인(歌人)이 되어 가마쿠라에 왔지만, 때는 변혁기의 험난한 시절이었다. 구귀족들이 몰락하고 온갖 천변지이의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혼란 속에서, 그는‘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그는 교토의 동남쪽 히노야마(日野山)에 작은 암자 한 칸을 짓는다. 도읍지의 집들에 비해 100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집. 규모 1장(丈;약30cm) 4방(方), 넓이 다다미4첩반(畳半), 높이 7척(尺;약210cm)이 채 못 되는 방장(方丈;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인 유마거사의 1장 4방의 방을 뜻함. 선종에서 절의 장로나 주지가 있는 방을 가리키게 됨)에 들어앉아,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무릇 인간이 친구로 삼는 것은, 부자를 존중하고 자기에게 잘해 주는 사람을 우선시한다. 정(情) 있는 사람이나 솔직한 사람을 반드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인간보다는 차라리 음악이나 자연을 벗 삼아 즐기는 편이 낫다.……
사람들이 괴로워 번뇌하는 삼계(三界;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는 오로지 마음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마음이 없으면 그 삼계는 없는 것이다).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한다면, 어떠한 재물 보화, 궁전, 누각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뭔가의 일 때문에 도읍지에 나오면 내 거지 같은 꼴이 부끄럽지만, 돌아와 여기와 있는 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세속의 먼지에 빠져 사는 것이 불쌍하게 여겨진다.……
부처님에게 배운 것은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초암(草庵)을 사랑하는 것도, 한적함에 빠지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
세상을 떠나 산림에 묻히는 것은 마음을 닦고 불도를 행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나는 성인(聖人)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탁함에 젖어 있다. 거주지는 정명 거사(淨名居士, 유마거사(維摩居士))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그 행하는 바는 주리반특(周利槃特;석가의 제자 중에서 가장 게으른 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비천한 응보(報)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망심(妄心)으로 인해 미친 것인가.……”
그리고 4년 뒤, 그는 생을 마감하게 된다.
가모노 쵸메이 <방장기> (大福光寺本)
초메이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과 사람을 피해 자신만의 안식처 속에 들어앉았다. 그 속에서 그는 진정 마음이 평안했을까?
세속의 때에 묻어 사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하였지만, 그 자신은 행복했을까?
적어도 <방장기>를 읽어보면, 답은 노(no)이다.
방장 속에 앉은 그는 여전히, 부자나 존중받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며, 비천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세상을 떠나 산림에 앉아 있지만, 해결되지 않은 ‘마음의 탁함’을 안고 자신을 한탄하고 있다. 초메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애달파진다.
세상을 탓하고, 사람들을 힘들어하며 나도 그리 살던 기억이 난다. 나도 세상과 사람들을 피해 나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살았다. 나도 초메이처럼 그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한 권의 책을 집필하다 생을 마감했을 법하다.
단지,
마음의 답답함이 목까지 차오르던 30대 중반의 어느 시기인가부터 나는 명상에 몰두하게 되었다. 산림 초야에 묻혀서도 해결되지 않을 ‘응보’와 ‘망심’을 걷어내고자, 내가 찾은 방법으로 그리 애쓰는 세월을 보냈던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