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리 Jan 08. 2021

종교 간 경계 의식이 없다

(일본영이기3)

일본인의 정신세계, 그 종교의식의 형성에 관련해 말해 볼 수 있는 특징점이 하나 있다. 

불교, 유교, 도교, 신사 신앙 등의 제 종교와 주술 등에 대해 서로 별달리 구별하려는 의식이 없이 습합적, 혼재적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처럼 이질적인 2개 이상의 종교 접촉에 의해 의식적, 무의식적 융합 현상이 일어나는 것(syncretism)은 세계 각지 종교사에 보이는 현상이지만, 일본에서의 그것은 특히 현저했던 것이다(上田正昭,<神と仏の古代史>). 


일본 최초의 불교 설화집 <일본영이기>만 보더라도, 신선사상과 도교와 불교가 융합된 이야기(上13, 28), 불교의 오계(五戒)와 유교의 오상(五常)의 일치를 보여주는 이야기(上23・上24・中3), 도교•유교가 습합 된 이야기(上4), 하나의 설화 속에 불교ㆍ유교ㆍ도교 어느 쪽인지 모를 이야기가 모두 혼재되어 나타나는 이야기(上5) 등이 만연하다.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있어서 특별한 종교적 경계(境界) 성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현저한 현상의 하나가 신(神)•불(彿)을 구별하지 않는 의식이다.      


오우미 국 야스 군 부내에 신사가 있었다. …… 그 야시로(社) 주위에 당(堂)이 있었다. ……그 당(堂)에 거주하던 대안사(大安寺)의 승 혜승이 잠시 수행하고 있을 때…… 작은 흰 원숭이가 와서 "나는 동인도국의 대왕이었다. ……도를 닦는 것을 금하지는 않았으나, (수행 승려의) 종자(従者)를 방해한 것에 의해 죄의 업보를 받았다. 후생에 이처럼 원숭이의 몸이 되어 이 야시로(社)의 신이 되었다. 이 몸을 벗기 위함이니 이 당(堂)에 거주하면서 나를 위해 법화경을 읽어라" 라고 하였다.(하 24)     


야시로(社) 주변에 불당이 있었던, 즉 신사 신앙과 불교 신앙이 공존했던 배경을 바탕으로, 이 같은 이방인의 신(흰 원숭이) 설화와 불교의 만남이 이루어졌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고대 일본에 있어서는 처음에 불교가 들어오던 당시부터 부처가 '불신(佛神)’(<일본서기>585년 3월조), 또는 '번신(蕃神)’(552년 10월조), '타국신(他國神)’(<원흥사가람연기병유기자재장(元興寺伽藍緣起幷流記資財帳)>747년), '인국(隣國)의 객신(客神)’(<영이기>) 등으로 이해되었다. 즉 부처는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신의 하나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천황이나 귀족들이 숭불(崇佛)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불교적 신심을 깊게 형성하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고유의 신기(神祇) 숭배와 위배됨 없이 같은 '효력'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귀족이나 호족들이 남긴 부처에 대한 원문(願文)을 보아도 주로 현세 이익(現世利益)과 조령(祖靈)의 추선(追善)을 위한 것으로, 이 또한 신에 대한 기원의 내용과 동일하다. 


8세기가 되면 신사에 절(신궁사;神宮寺)이 생기고, 동대사(東大寺)의 대불(大佛)을 건립할 때 하치만신(八幡神)이 이를 도왔다는 기사가 정사 <속일본기>에 보인다. 또 


간무(桓武) 천황 시대에 전교 대사(伝教大師; 사이쵸 最澄)라는 성인이 있었다. ……

당(唐)에 건너가려 할 때 먼저 우사노 미아(宇佐宮)에 가서, “가는 길에 바다의 두려움 없이 무사히 건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 드리고……805(延暦24)년에 귀조(帰朝)하였는데, 그 기쁨을 보고하기 위해 우선 우사노 미아에 가서, 신 앞에 예배 공경하며 법화경을 읊으며 말하길……"대승불교의 유일한 종문(一乗宗)을 세워서, 유정(有情), 비정(非情)이 모두 성불할 수 있음을 깨치게 하고,……약사불(薬師仏)을 만들어 모든 중생의 병을 낫게 하려고 합니다. 단지 그 원(願)은 하치만 대보살(八幡大菩薩)의 가호로 이루어질 일입니다……또 가스가 신사(春日社)에 가서 신 앞에 법화경을 읊으며……<곤쟈크모노가타리슈11-10>


당에 갔다 와 천태종을 전했던 사이쵸와 같은 당대 최고급 승려라 할지라도, 제일 먼저 신 앞에 기원을 올리는 모습이 이처럼 자연스럽다. 


헤이안(平安) 시대에는 신전독경(神前讀經)과 더불어 사승(社僧)이 등장하고, 중세가 되면 동대사의 유명한 승형팔만신상(僧形八幡神像;국보)과 같이 불상을 흉내 낸 신상(神像)도 만들어진다. 

        동대사(東大寺) 목조 승형 하치만신 좌상(木造僧形八幡神座像);(財)美術院


또한 신은 불법을 수호한다는 호법선신설(護法善神說)이 주장되기도 하고 이에 따라 본격적인 신불습합(神佛習合) 이론이 형성되는 등, 일본 역사에 있어 신과 부처는 결코 둘이 아닌 하나로 존재해 왔다. 

 

구마노궁 만다라(熊野宮曼陀羅. 클리브란드 미술관 소장);

12세기가 되면 불(佛)을 본지(本地)라 하고 신(神)을 불의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한 임시의 모습이라 하는 본지수적 사상(本地垂迹思想)이 나타났다. 가마쿠라 시대 이후에는 이러한 신앙을 표현하는 수적 만다라도(垂迹曼陀羅図)의 제작이 성행했다. 그림의 사전(社殿) 상방의 동그라미 안에 그린 것이 본지불(本地佛)



 임부 안산 기원(妊婦安産祈願)의 행법(行法)(<北野天神縁起絵巻>13세기 초기경, 北野天満宮 소장)

임부의 안산(安産)을 위해 안쪽에서는 승려가 기도를 하고, 가운데 쪽에서는 마 요케(魔除け;액 막음)의 명현(鳴弦)을 행하고, 정원 앞에서는 온묘시(陰陽師)가 제문(祭文)을 읽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모습. 

신도, 불교, 음양도의 작법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둘러싸고, 일본의 어느 학자는 “근현대적 개념의 신도, 불교, 유교와 같이 각각의 종교적 구분을 가지고 파악하려는 것은 오히려  전근대 사상 세계의 다이너미즘과 리얼리즘을 재현할 수 없게 한다”와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이 세계의 보편종교를 받아들이면서,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이를 혼용해 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 이념들 간의 구체적인 차이가 논쟁화 되지 않았고, 본질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종교를 통해 얻고 싶었던 것은, 고도의 이념적 정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과제에 대한 해결처였기 때문이다.  삶에 도움이 되는 방편으로서, 종교라는 도구가 외피적으로 활용되어 왔던 역사를 말해준다.  그리고 이는 비단 종교에서 뿐만이 아니고 일본이 역사적으로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수용해 왔던 보편적 방식의 하나였다.       

                                          



19세기 후반 서구에 의해 나라의 문이 열리자, 일본은 국가 공인 신도를 탄생시키고 '일본 고유의 민족 종교'라

드높였다.  "일본에 충성을 바치며 결사적으로 싸우"고자, "신도를 일본 정체성의 초석으로 고수하며, 재발명했다"(유발 하라리<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더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상적 이념성이 모호했던 애니미즘적 정령 신앙이, 그동안 불교와, 또 때로는 유교와(에도시대 야마자키 안사이의 신유일치의 수가 신도 등), 또 때로는 국가와 결합하면서 "민족성과 인종이라는 대단히 근대적인 사상"의 옷을 걸치게 된 것이다. 고민이나 저항 없이 그 어떤 채색도,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행보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듯하다. 이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근대화의 보편적 도구와 구조를 채택하는 동시에 독특한 국가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전통 종교에 의존"하는 사례를 낳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탄생과 더불은 인생의 중요 의례는 신사에 가서 하고, 결혼은 기독교식으로, 죽음은 불교식으로 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먹고 살기 위한 현세적 삶, 물질적 가치를 이루는데 있어 선두 주자를 달려오며 여타 나라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상의, 인류사회에 도움을 줄만한 형이상학적 정신적 메시지를 던져주지는 못하는 점 등은, 그들이 역사적으로 살아왔던 방식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일 인식에 영향 끼친 중화 사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