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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Aug 11. 2020

신라 왕자, 일본 가다 (제1탄)

아메노 히보코(천일창) 일본 가다

    

일본 열도의 초창기 역사 속에 한반도계의 왕자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종종 있다. 그 제1탄은 신라 왕자 아메노 히보코(천일창;天日槍)이다.     


신라 왕자 아메노 히보코가 내귀(來歸;와서 귀화)하였다. 가져온 물건은 하후토노 다마(羽太玉) 1개, 아시타카노 다마(足高玉) 1개, 우카카노 아카시노 다마(鵜鹿鹿赤石玉) 1개, 이즈시노 가타나(出石小刀) 1구(口), 이즈시노 호코(出石鉾) 1지(枝), 히노 카가미(日鏡) 1면(面), 구마노 히모로기(熊神籬;히모로기는 신성한 장소, 혹은 구마(곰) 노 히모로기는 신성한 곰고기?) 1구(具), 합 7개의 물건이었다. 

이에 다지마 국(但馬國;효고현 북부)에 보관하여, 영원히 신물(神物)로 삼았다. 


일설에 이르길, 처음 아메노 히보코가 배를 타고 하리마 국(播磨國;효고현 남부)에 정박하여, 시사와 읍(完粟邑)에 있었다. 그때 천황이 미와노 기미(三輪君)의 선조 오토모누시(大友主)와 야마토노 아타이(倭直)의 선조 나가오치(長尾市)를 하리마에 보내 아메노 히보코에게 묻기를, “너는 누구나, 또 어느 나라 사람이냐.” 

아메노 히보코가 대답하길 “나는 신라 국주(新羅國主)의 아들이다. 그런데 일본에 성황(聖皇)이 있다고 듣고, 나라를 동생 치코(知古)에게 맡기고 귀화하였다. 이에 받치는 물건은 하호소노 다마(葉細珠), 아시다카노 다마, 우카카노 아카시노 다마, 이즈시노 가타나, 이즈시노 호코, 히노 카가미, 구마노 히모로기, 이사사노 타치(膽狹淺大刀) 모두 8가지다." 

아메노 히보코에게 조(詔)를 내려, 하리마 국의 시사와 읍(完粟邑), 아와지 섬(淡路島)의 이데사 읍 (出淺邑)의 2 곳에 마음대로 거주하라 하였다. 

아메노 히보코는 답하길, “신이 장차 살 곳은, 만약 천은(天恩)을 내려주신다면, 신이 원하는 땅에 살도록 허락하신다면, 신이 친히 여러 지역을 둘러보고 신의 마음에 맞게 지급받길 원합니다.” 하니 이를 허락하였다. 

이에 아메노 히보코는 스스로 우지 강(菟道河)를 거슬러 올라 북으로 오우미 국(近江國;시가현 滋賀県) 아나 읍(吾名邑)에 들어가 잠시 살았다. 다시 더 오우미(近江)로 부터 와카사 국(若狹國;후쿠이 현 福井県)를 걸쳐 서쪽으로 다지마 국(但馬國)에 이르러 거주지를 정하였다. 

오우미 국의 가가미 촌 하자마(鏡谷)의 수에 비토(陶人)는, 아메노 히보코를 따라온 사람이다. 


아메노 히보코는 다지마 이즈시(但馬出嶋) 사람인 후토미미(太耳)의 딸, 마타오(麻多烏)를 아내로 삼고 다지마 모로스쿠(但馬諸助)를 낳았다. 모로스쿠는 다지마 히나라키(但馬日楢杵)를 낳았다. 히나라키는(日楢杵) 기요히코(淸彦)를 낳았다. 기요히코는 다지마 모리(田道間守)를 낳았다.

(<일본서기>권 6 스닌(垂仁) 천황 3년 3 월조)             


 스닌(垂仁) 천황은 제11대 천황으로, <일본서기> 기년(紀年)에 따르면 BC29년에서 AD70년에 이르기까지 장장 99년 간이나 재위한 천황이다. 이 시기는 고고학적으로 보면 청동기, 철기의 야요이(弥生) 시대에 해당한다.      


일본 열도의 고대 정권 성립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청동기, 철기 문명은 한반도로부터 전해졌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뒷받침하듯, <일본서기>가 전하는 신라 왕자 아메노 히보코의 선물 목록은 당시기의 대표 상징물 그 자체이다. 갖가지 옥과 거울, 청동, 철기의 무기류 등의 선진 문물들은 영원한 ‘신물(神物)’로, 보물로 받들어 모셔졌다. 신라의 왕자는 '스에 비토(스에키(須恵器) 토기를 빚는 사람)'와 같은 기술자를 동반하여 일본으로 갔다. 


 bc3-bc 2세기경, 후쿠오카 시(福岡市) 요시타케(吉武) 다카기(高木) 유적 3호분 출토- 청동 검, 동과(銅戈), 동모(銅矛), 관옥(管玉), 동경(銅鏡)



신라 왕자는 왜 일본에 건너갔을까? 

남겨진 기록을 읽는 우리의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는 일본의 천황에게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하게 해 달라” 당당히 요구하였고, 이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그는 일본 땅을 쭉 둘러보다 다지마 국(지금의 효고 현 북부)에 정착한다. 이 지역은 또 신라계 하타 씨(秦氏)의 거주 전승으로 알려진 지역이기도 하다.  


아메노 히보코(天日槍)는  <일본서기> 오진기(応神紀;15대)에 ‘천지일모(天之日矛)’, <고어습유(古語拾遺)>에 ‘해회창(海桧槍)’이라 보인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한 창(槍, 矛), 혹은 ‘천(天)’을 미칭(美稱)으로 보아 ‘태양에 제사 지내는 창’이라는 의미로 풀이되기도 한다(김현구 외 <일본서기 한국관계 기사 연구 1>).


고어 일본어의 ‘아메’ ‘하늘(天)’ 또는 ‘바다(海)’의 의미를 지닌다. ‘바다 건너=하늘에서 온’이라는 뜻이 중의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아메노 히보코 신라 왕자 설화는 이 밖에도 <하리마국 풍토기(播磨国風土記)><츠쿠젠국 풍토기(筑前国風土記)>일문(逸文),<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고어습유(古語拾遺)>등의 다수의 기록을 통해 그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있다. 내용상 약간의 상이점은 있으나, 신라 왕자가 일본 땅에 가서 정착하였고, 그곳의 호족 여성과 결혼하여 대대로 자손을 낳아 살았다는 점에는 다름이 없다.            


일본 학계는 스닌 천황 시기가 실제 4세기경 고분 시대 전기였다고 비정하기도 한다.

당시기에는 황족이 죽으면 측근은 모두 순사(殉死)를 명하였으므, 천황이 이를 좋지 않게 여겨, 이즈모로부터 하지베(土部)를 불러 하니와(埴輪;흙으로 빚은 인형)를 만들어 능묘 주위를 장식하게 하였다는 등의 전승이 보이기 때문이다. 712년경 완성된 <일본서기>의 기록이다 보니, 여러모로 인위적인, 혹은 오류에 의한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무튼 스닌 천황의 재위 기간이 99년 간이나 되다 보니, 그는 아메노 히보코의 4대손, 다지마 모리와도 관계하게 된다. 

다지마 모리는 스닌 천황 90년에 도코요노 구니(常世国;신선의 땅)에 도키지쿠노 가쿠노미(非時香果), 야호코(八竿) 야카게(八縵;무늬 없는 견)를 구하러 파견되었다가, 이를 가지고 10년 만에 돌아온다. 그러나 이미 천황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슬피 울다가 자신도 죽어 버렸다. 군신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다지마 모리는 미야케노 무라지(三宅連) 씨의 시조이다(<일본서기> 동 99년明年3월壬조).

    

신라 왕자,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이렇게 일본인의 선조가 되었다.

    

신라계, 한반도계 사람들의 일본 정착 과정의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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