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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Aug 07. 2020

일본인들의 가미(神, 신) 신앙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신앙이 없었던 순간은 없다”라는 지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일본인들의 역사 속에서 “신(가미) 신앙이 없었던 적이 없다.” 


일본인들은 매년 연초가 되면 신사 참례(神社参詣, 하츠모우데(初詣))를 한다. 메이지 신궁(明治神宮)의 연초 참배객은 319만 명이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이 풍습의 기원은 적어도 고대 말기 11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료에서 확인해 보면 원정기(院政期) 때 이미 귀족사회 전체에 신사 참례의 풍습이 있었다(초견은 <수기(帥記)>1081년 정월 9일조).

       

신, 가미(カミ, 神) 관념의 발생은 일본의 죠몽(縄文, 신석기) 시대로부터 확인된다. 죠몽 시대 후기가 되면 주거지와 묘지가 분리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현상을 통해 학자들은 인간이 삶과 다른, 죽음 등과 같은 미지의 영역을 자각하게 된 것으로 해석한다(松本直子<先史日本を復元する2, 縄文の ムラ と社会>).


8세기 초기에 작성된 <히다치 후도키(常陸風土記)>(行方郡)에는 뱀이 ‘야토(夜刀)노 가미(神)’로 기술되어 있고, <고사기(古事記)>(712년 완성)나 정사인 <일본서기>(720년)에서도 각종의 동물이나 자연현상 등이 ‘가미’적 현상으로 파악되어 있다. 

야요이(弥生, 청동기/철기) 시대가 되면 이러한 ‘가미’를 모시는 샤먼이 등장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미’가 자연물에 빙의하여 현현(顕現)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이 고대 ‘가미’ 관념의 탄생이라 볼 수 있다(佐藤弘夫<本地垂迹>).      


이러한 ‘가미’가 마치 인간의 모습을 한 것과 같이 표현되기 시작했던 것은 6세기 불상의 이입이 그 계기가 아니었나 추정되고 있다. 9세기가 되면 많은 신상(神像)도 조립되고, ‘가미’의 회화(絵画)도 그려지게 된다.  


구마노 하야타마 대사(熊野速玉大社)에 모셔져 있는 게츠미코 가미(家津御子神)상






구마노 하야타마 대사(熊野速玉大社)에 모셔져 있는  후스비 가미(夫須美神)상



 일본 고대국가의 본격적인 율령인 대보 율령(大宝律令,701년 제정)에는, 당의 사령(祀令)을 본떠 ‘신기령(神祇令)’이라는 편목이 만들어졌고, ‘신도(神道)’라는 용어도 사용되었다. 정사의 기록에서는

 

천황은 불법을 믿고, 신도를 존중한다(天皇信仏法尊神道)”(<일본서기>585년 요메이(用明)천황 즉위 전기(即位前紀)) 


등과 같이, 외래 종교인 불교와 대비시키면서 ‘신도’를 일본 고유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리하여 가미(神)를 전담하여 모실 특정의 씨족이 정해지기도 하였다(<일본서기> 스진(崇神)천황 6년조). 


“옛 황조의 천황 등을 본받아 짐의 때에도 신기(神祇)를 모시기에 어찌 게으름을 피우랴"(594년 2월조)하면서, “군신들에게 신기를 받들도록” (607년 2월 9일 詔) 명하는 등, 


본 천황가 고유의 정신적 지주로서 ‘신기(신)’를 받들고자 하는 의식이 정착되어 갔다.


7세기 후반의 텐무(天武) 천황 시절에는 천황 자체를 가미로 보려는 사상도 등장하게 된다(679년 5월을유조, <만엽집> 등). 이렇듯 일본의 가미, 신기 신앙(神祇信仰)은 천황가의 공식적인 선언을 통해서도 착착 뿌리 내려져 갔던 것이다.      


이세 진구(伊勢神宮;이세 신궁)의 정전(正殿. 三重県伊勢市) ; 시키넨 센구(式年遷宮;식년천궁 -옆에 부지를 마련해 놓고, 7세기 이후 지금까지 20년마다 한번씩 교대로 옮겨 짓는다). 

 ;고대 최고의 국가제사의 대상으로 천황 이외의 사적 참례가 금지되었다.

근대 메이지 이후에는 천황제와 결합한 국가신도(国家神道)의 중심지였다. 2차 대전 이후 종교법인화.


이즈모 다이샤(이즈모 대사 出雲大社;島根県出雲市)


 

일본인들은 ‘가미’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 이에 대해서는 커다란 특징점이 존재한다.

 고대 일본인들의 기록 속에 등장하는 가미(神)는, ‘가뭄에 빌면 비를 내리는’ 등의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한 ‘분노와 저주’를 내리는 존재로 등장한다.     


 “ 아라부르 가미(荒ぶる神, 거친 신)가 길 가는 사람들을 많이 죽이므로, 그 (저주하는) 이유를 점치자……‘나의 야시로(社, 사당)를 지어 제사 지내도록’ 요구하였다”(<히젠고쿠 후토키(肥前国風土記)>)든지, 


“온 나라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점을 치니, ‘가모 가미(賀茂神)의 저주(祟り)’라 하였다. 이에 4월 길일에 제사를 지내자 오곡이 여물고 전국이 풍요로워졌다”(<야마시로고쿠 후토키(山城国風土記)逸文)라고 한다. 


또 당시 역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는데, 천황의 꿈에 ‘오모노누시노 가미(大物主神)’가 나타나 자신이 역병을 일으킨 것이며, ‘오호타타네코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면 평안해질 것‘이라 하였다(<고지키(古事記,고사기)>스진(崇神)천황기)라고 기록한다. 


이상과 같은 예는 <일본서기> 등의 정사(正史) 속에도 무수히 등장한다.     


애초에 일본인들이 인식한 신 관념 속에는 저주하고 분노하며, 사람을 죽이고, (역) 병을 일으키는 등의 ‘아라부르 가미(荒神)’, 즉 거칠고 공포스러운 존재로서 인식되는 면이 컸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인식의 성립은 당시 일본인들이 놓여져 있던 자연환경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고래로부터 일본 열도 지역은 풍수해,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와 이로 인한 역병 등으로 얼룩져 왔다. 이에 관련된 무수한 자료가 현존한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가미란, 각종의 재난적 상황-자연재해, (역) 병 등-을 일으키는 위협적이고 두려운 존재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위기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원처-기복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즉 가미란 위력적인 '힘' -그 자체의 표상이며, 이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의 존재였다.

 

강력한 힘 앞에는 주저 없이 고개를 숙이는 경향성이 오늘날의 일본인들에게도 발견되는 것은, 그러한 가미 관념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간혹 일부의 일본인들이 ‘신국(神國) 일본’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그 신(神)이 무엇인가 잘 이해해 보아야 한다. 

이는 전지전능한 유일신 개념이 아니다. 자비, 박애의 대정(大情)의 신이 아니다. 대적할 수 없는 위압적인 ‘힘’을 상징하는 것이며, 고래로부터의 정령(精靈) 신앙적인 요소를 벗어나지  못한 개념이다.   


“현대의 많은 일본인들이 신사의 제신명(祭神名)도 모르고 예배하고 있는데, 이에는 신관념(神観念)의 희박함이 드러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은 신사 참례(神社参詣)를 하고, 방안 한 모퉁이에 가미다나(神棚)를 설치하기도 한다. 또 공장이나 빌딩, 집을 지을 때에는 신사의 간누시(신관)를 불러 지진제(地鎭祭)를 지내기도 한다. 지금도 일본의 동네를 걸어가다 보면 그 골목 퉁이 곳곳에 서있는 작은 신사를 발견할 수가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 등록된 신사는 8만 5234개, 신자는 1억842만 7100명을 헤아린다고 한다(pen books<神社とは何か?お寺とは何か>)


이렇듯 가미(神), 가미 사상은 그 옛날 옛적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의 의식의 저변에 존재해 온 초석의 하나와도 같다.  


왜 우주로켓이 날아다니는 현대사회에서까지 일본인들은 가미를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아직까지 어찌할 수 없는 미해결의 영역―재해와 생로병사 등―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뿌리 내려 무감각해진 관념, 관습 때문일까.       


유학 시절, 나도 일본인 친구를 따라 어느 신사에 가서 향을 꼽고 손뼉을 치며 기도를 따라 했던 적이 있다. 대학원의 임신한 일본인 친구가 신사에 가서 ‘오산(お産) 안전’의 부적을 받아오는 것을 보았고, 또 어떤 일본인 지인은 ‘교통안전’의 부적을 내게 선물로 사 주었다. 


재미있게 생각되면서도, 왜 이렇게 '가미'를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그게 궁금했다. 인간 마음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던 것은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사진은 우사 신궁 본전(宇佐神宮 本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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