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의 나이가 되니, 죽음으로 그 모습을 영영 볼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제법 수를 헤아린다.
친했던 지인이나 가족의 죽음 앞에 서면 슬픔만큼이나 더욱더 절실히, ‘생사의 실체’에 대해 냉철해지려 애쓴다.
“우리에게 지각되지 않는 한 실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매 순간 겪고 있는 실재란 것은 우리 스스로가 관찰자가 되어 그것을 관측할 때에만 역설적으로 드러난다”는 이론이 있다
(상보성 원리 (theory of complementarily), 덴마크의 이론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창시).
즉,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았다”라는 것 자체가 우리 의식의 허구라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심신의학 연구자 디팍 초프라 박사가 제기한, 다음과 같은 10가지의 ‘새로운 가정’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균형 역, 정신세계사, 1994).
1. 우리 몸을 포함한 물리적 세계란 한갓 관찰자의 ‘반응’ 일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세계에 대한 경험을 지어내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만들어낸다. 관찰자로부터 독립적인 객관적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우리의 신체는 고형의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에너지와 정보로 이루어져 있다. 신체를 이루는 에너지와 정보는 우주에 퍼져있는 무한한 에너지와 정보의 장(場)의 일부분일 뿐이다. 모든 원자의 99.9999퍼센트가 텅 빈 공간이며, 실제로는 진동하는 에너지의 덩어리인 아원자 입자가 공간 속을 빛의 속도로 돌아다닌다(양자물리학). 이 진동은 정보를 지니고 있다. 모든 원소들이 하나의 고유한 정보이다.
3. 몸과 마음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다.
4. 인체의 생화학 작용은 의식의 산물이다. 신념, 생각, 그리고 감정이 모든 세포 속의 생명을 지탱하는 생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생각은 양자의 장을 바꾸어 놓는다. 생각은 공허의 무한한 가능성을 어떤 특정한 시공간적 사건으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가 육체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특정한 시공간적 사건이다.
5. 인식이란 학습된 현상이다.
몸이 겪은 경험을 포함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우리가 배운 인식 방법에 의해 완전히 조종되고 있다. 자신의 인식을 바꾸면 자신의 몸과 세계에 대한 경험도 바뀐다.
각 개인의 반응들은 반드시 학습된 것이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태어난 이래로 배운 모든 해석 방식의 육체적 산물인 것이다.
6. 지적 정보의 자극이 우리의 몸을 매 순간 새로운 형태로 창조한다. 우리의 현재 모습은 이 자극들의 총합이다. 이 자극들의 양상을 바꿈으로써 우리는 변화할 것이다.
7. 모든 인간은 전체 우주를 지배하는 지능(intelligence)의 패턴과 이어져 있다. 우리의 몸은 우주신의 일부이며, 우리의 마음은 우주심의 한 단면이다.
8.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만물 배후에 숨어 있는 실재는 영원하다. 이른바 시간이라는 것은 사실은 계량화 된 영원이다.
9. 우리 각자는 모든 변화의 배후에 있는 실재 속에 살고 있다. 오감으로서 인식되지 않는, 우리의 깊숙한 내수에 ‘존재 being’의 가장 내밀한 핵심, 즉 개별적 인격과 에고와 신체를 만들어 내는 불변의 장이 있다. 이 ‘존재’가 우리의 본질적 상태이며 우리의 참모습이다.
우리의 지상의 목적은 영혼으로서의 진아(현대 심리학 용어로 의식의 연속체)와 긴밀한 관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10. 우리는 노화와 질병과 사망의 제물이 아니다. 이것들은 보는 자가 아니라 보이는 것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 보는 자는 어떤 형태의 변화에도 물들지 않는 영원한 ‘존재’의 나타냄, 즉 영(spirit)이다. 실상 모든 세포는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다양한 층의 패턴으로 조직된 지능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원자보다도 작은 아원자 입자가 발견되고, 원자가 여러 가지 신기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주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되던 뉴턴 물리학이 무너지고, 원자는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양자물리학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즉 내 앞의 사람이나 나는, 이 자체로 본래 '허공(에너지)'인 것이다.
'본래 하나'인 것이다.
"유전자가 아니라, 인간의 믿음(마음)과 환경이 몸과 운명을 바꾼다"는 세포 생물학자의 주장이 함께 힘을 얻고 있다(브루스 H 립턴 <당신의 주인은 DNA가 아니다>)
그렇다면 태어난다 죽는다 했던 ‘내 몸’이라는 것도, 사실상 인간 마음의 허상이라는 것이다.
물질인 몸이 있으면 '삶'이고 몸이 없어지면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람 머릿속 관념이었음을 과학이 입증하는 시절이 되었다.
내가 살면서 보고 듣고 만들어 온 머릿속 허상의 관념을 없애어 깨끗한 본래의 우주 의식과 하나 되면, 생사 일여의 경지가 있음을 말한다.
이 시대 속에서 "이제까지의 인류는 빈곤, 기아, 전쟁 문제 해결을 위해 살았지만, 앞으로의 인류는 행복과 영생불멸을 위해 살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의 제언>).
인류사의 수많은 성현들 말씀 - 살아생전에 허상의 자기를 없애는, 마음 닦는 공부를 해서 진리(참 본성)를 깨우쳐야 한다는 가르침의 의미 또한 거대한 하나의 물줄기로 연결된다.
삶을 산다는 것 - 태어나서, 먹고, 자고, 일하고, 나이 들고, 병들고, 죽고-이 모든 물질적 현상이 이제까지 내가 알던 ‘인간 삶’이었고, 그것을 매일매일 숨 가쁘게 경험하는 이 작은 몸뚱이가 '나'였을 뿐이었지만……
형체로 보이는 만상은 영원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 물질 ‘나’로부터, 내 중심적 관념으로부터 떠나면, 무한대의 우주적 존재- “영원히 변치 않는, 태초로부터의 생명 그 자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
삶이라는 레인보우가 있어도 없어도, 참의식의 우주, 참 본래는 그냥 그렇게,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