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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Aug 25. 2021

외로운 마음 벗어나기

-마음수련 명상기-



지인 Y 씨에게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외로워요……”

그날 저녁, 닭갈비 철판을 마주하고 앉아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지만 누군가와 잠시 시간을 함께 한다 해도, 그의 마음속 외로움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못하였을 것 같다.


지난날의 나는 늘 외로웠다.

깊은 바다, 홀로 헤엄치는 물고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둡고 막막함. 그렇지만 쉽사리 물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게 느껴졌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부담스럽고, 내가 다가가는 것도 귀찮게 여겨졌다.


명상을 하게 되면서 지난날의 나의 삶이 돌아보아졌다.


유년기적 우리 집. 항상 말이 없던 부친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 부친의 성품을 많이 닮았다.   

집안에 딸이 하나였다. 남동생 둘은 어릴 때부터 한 방을 쓰기도 했지만, 나는 늘 혼자 방에 있었다. 조용한 것에 안정감을 느끼고, 말 수가 적었다.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지만, 가족들과 마음을 나누고 살지는 못한 것 같다. 부모와의 대화가 힘겨웠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안 하다 보니 말로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무슨 일에 대해 그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면 애를 먹었다. 기껏 뭔가 말하려고 하면, 격양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감사한 일에도, 너무 감사하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사람들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생각에, 상처 받기 싫다며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하였다. 누군가는 나를 부끄럼쟁이라고 말해 주었다.


처음 집을 떠나 유학을 가고, 외로움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붙들고 싸우다 보면 일단 말을 할 시간이 없었다. 수업시간에도 주로 듣는 식이었고, 수업이 끝나면 일본 친구들은 아르바이트하러 바쁘게 흩어졌다.

“목에 거미줄 치겠어.” 한국 유학생 언니가 지나가며 언뜻 푸념하는데, 모두 비슷한 상황인가 싶었다.

 마음을 나눌 사람도, 그럴 시간조차도 없는 나날이었다.


주말에는 한국인 교회에 다니며 사람 속에 묻혀 보았다.

친하게 말 걸어 주는 사람들 속에서 잠시 들떠 보기도 했지만, 헤어져 집으로 발길을 돌리면 또 외로움이 밀려왔다.

무서웠다. 황량한 들판에 혼자 서있는 것 같았다.


혼자 사는 사람이, 사람을 집에 초대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내 방에 있다 나가면, 새삼 그 쓸쓸함을 견디기 어렵게 된다. 차라리 그런 상황을 안 만드는 것이다.


유학 5,6년째가 되던 즘에, 내 입에서 이런 기도가 튀어나왔다. “하나님, 저에게 정해주신 배우자가 있다면 지금 만나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박사 논문을 앞두고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그 배우자는 이내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홀로 일본에 남아 논문을 써야 했다.

대학원 선배들이 일본에 취직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하는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 취직이 되었다. 직장에서 서울 집을 오가기 힘들어 다시 학교 근처의 아파트를 얻어 주중에 혼자 살게 되었다. ‘내 팔자가 왜 이런가’ 생각한 것은 다시 혼자 놓이는 것이 무척 두려웠나 보다.


그렇게 강하게 형성된 외로움의 마음은,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항시 나를 잠식시켰다.  



명상을 하면서 돌아보니, 내 마음 한가운데 외로움 덩어리가 떡 버티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빙산과도 같았다. 단단하고 차가워, 때때로 불어오는 웬만한 훈풍 속에서도 녹지 못하는 것이 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살아왔던 삶. 어느덧 모든 인간관계가 불편해지고, 상대하는 것이 힘들어졌던 시간들.

사람과의 관계 형성에 미숙하고, 자신의 마음속 감정표현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그저 내 할 일을 내 혼자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마음속 외로움을 안고 있는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약 내가 어릴 때부터 마음의 벽 없이 가족들과 친구들과 또 주위의 많은 인연들과 따스한 대화를 나누고 살았더라면, 적어도 내 마음속에 이런 차가운 돌덩어리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원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음을 나누는 삶이었던 것이 아닐까.    


지난 날의 삶을 돌아보며 내 마음속 형성된 마음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져 가며, 하나하나 마음에 깨달음이 왔다. 빼기를 하면서 서서히 마음이 녹아져 내렸다.


                   



어느 틈인가, 적지 않은 변화들이 저절로 왔다.

혼자 있어도 마음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다.

사람 속에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그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마저 느껴졌다. 그냥 마음 편히 그 순간을 누리게 되었다.


외로움이란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삶에 의해 내 속에 형성된 의식이었다.

부친으로부터 말 수 적은 유전적 성품을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외롭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이런저런 환경을 겪는 가운데 내가 그 속에서 내 식대로 반응하며, 나만의 마음 세계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누군가 함께 있어도, 없어도, 굳어진 나 혼자만의 마음 세계에 들어가 있었으니, 외롭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살면서 그렇게 외로움의 마음을 만들어 간 것이라면, 그건 적어도 나의 참 본성은 아닌 것이다.


                  



나의 외로움의 마음이 해결되어 가면서, 비로소 주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로움, 우울증 등을 앓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더군다나 요즘은 코로나 시대이다. 외로움의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도 한층더 깊어졌다.


개인주의적으로 변한 현대사회에서의 고립감을 하소연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나라와 사회가 노력했던 모습이 확인되기도 한다(kbs다큐, <명견만리;소견 없는 비명 외로움, 사회를 아프게 하다>. 2018,10,12일 방영 등). 영국에서는 외로움부 장관이 임명되고, 공동 공간, 공동 활동의 장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늘려 가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전한다.


서로 어울려서 ‘잠시 외로움을 잊는’ 차원보다는, 한걸음 더 깊이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외로움은 인간 마음의 병이며, 그 마음이 사람과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마음 세계 속에 있을 때 느끼는 고독감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마음 상태를 우선 치유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사람과 친하고 즐거우면 행복하고 살 맛이 난다는 것을, 명상을 통해 고독한 내 마음속 세상 벗어나서야 나도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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