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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Sim Feb 19. 2020

서부 아프리카 생존기 2화: 미국회계사가아프리카에온이유

23살 전까지 나는 역마살 따위는 생각해보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위로는 대구, 아래로는 제주 밖 경계선을 넘어본 기억이 없다. 23년을 살았던 부산에서도 번화가였던 서면은 물론이고, 현재 집값 후들후들하다는 해운대도 큰 맘먹고 가야 했던 부산 시골 촌사람이었다. 부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취업하고, 부산에서 자리 잡아 살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23살 유학 전까지는.

세상 걱정 없던 시절. 이런 포즈는 누가 시킨 걸까?


내가 살던 마을. 부산은 부산인데 예전엔 김해라고 불리던 지역이라, 가끔 지역 정체성의 혼돈이 오곤 했다. 

이제 재개발로 파밭, 토마토 밭은 없어져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더라.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사귀었던 남자 친구의 군대 제대과 동시에 우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의 사돈의 팔촌쯤 되던 먼 친척집에서 3개월 만에 눈물, 콧물 흘리며 조지아주를 나와 우리는 텍사스주로 다시 이주했고, 그의 오랜 친구와 친구의 고모부와 함께하는 텍사스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햇수로 10년을 살았다. 


유학 및 사회 경험까지 10년의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우리는 결국 헤어졌고 셋 중 나 혼자만이 석사까지 졸업했으며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결국 나의 첫 미국 생존기는 "실패"했다.


하와이 바다. 

좀 더 많이 돌아다닐걸 그랬다. 


2018년 8월 15일. 나는 한국행이 아니라 멕시코 칸쿤행 비행기를 끊어 어릴 적 꿈꾸던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내 수중에 남아있던 3천만 원과 함께. 꿈이었던 세계여행을 했지만 나에게 이 여행에 목적도 의미도 없었다. 그저 "여행자"라는 행복한 백수의 타이틀이 좋을 뿐. 중간에 배로 부친 귀국 짐 때문에 여행 2개월 남짓 만에 한국에 귀국을 했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해 5년 만에 갔던 한국에서 다시 3주 만에 집을 나섰다. 

이때의 날씨가 그립다, 코끝까지 시리던 바이칼 호수. 


그다지 감흥 없던 유럽 여행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끝이 났고 나는 이집트를 시작으로 에티오피아-케냐-탄자니아-잠비아-보츠와나-남아공 동부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아프리카 여행 후에는 못다 한 남미 여행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대만에서 귀국했다. 십 년 만에 세계를 돌고 돌아 부산으로 정착하려 돌아왔다. 나의 역마살도 이로써 끝일 줄 알았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았던 8개월가량의 여행기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미국에서 "개"같이 벌었던 2000만 원+a의 돈을 "정승"같이 썼던 나의 잊지 못할 일탈이었다.


영국에서 도망치듯 나와 떠났던 모로코, 생애 첫 아프리카 방문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나는 부단히도 유목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는 개뿔.. 내 나이 32, 눈은 높을 때로만 높아져 죽어도 살기 싫다던 서울에서 일할 각오만 가진 채 취업을 준비했다.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밥, 주위만 둘러봐도 사 먹을 수 있는 떡볶이, 남이 쓰던 호스텔 침대가 아닌 내 침대, 책상.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던 모든 것들이 부산에 있었지만 계속되는 서류 탈락에 나의 멘탈은 점점 붕괴되기 시작했고 부산에서만 살아야만 하는 목적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에 정착한 지 2달 만에 나는 해외취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10년간의 미국 생활로 깨달은 교훈, 신분이 해결되지 않는 나라는 1도 고려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Working conditon 철칙을 삼아 워킹홀리데이를 지원해주는 나라들을 제하고 나니(나이가..) 결국 나는 아프리카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돌아오면 부모님 곁에서 살뜰한 딸이 되려고 했는데, 가구만 잔뜩 들여놓고 집을 떠나게 되었다. 한 달은 이 침대에서 잤을까? (도대체 왜 산 거냐?) 


2019년 8월 20일. 미국을 나온 지 1년 만에 나는 지금 현재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덜 유목하지만 더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이 곳은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불어권 국가다. 적어도 전공은 살려 취업했으니 다행이면서도 회사 사람들은 내 관종끼 다분한 성격이 회계와는 전혀 맞지 않다는데 공감하는 눈치다. 

다시 아프리카, 아디스 아바바, 에티오피아 공항. 서부 아프리카에 오고 나서 느낀 것, 동부 아프리카는 천국이었다.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면서 살고 싶은 나라는 한 군데도 없었다. (남아공 정도면 글쎄..) 

더운 것을 극혐 하는 여름 혐오주의자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내 인생 가장 더운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젠장, 

역시 이렇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임을 여지없이 느끼는 중이다. 


2020년 2월 19일. 

지난 10년의 회고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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