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몰입하지 못하는 나

마흔에 자아 찾기 (9)

by 이오

요즘 나는 단기임대숙소의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 나가고 있고 재미도 느끼고 있지만 100% 몰입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의아했다. 원래의 나는 목표가 있으면 다른 일은 제쳐두고 그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몇 주만 바짝 집중하면 오픈 준비를 빠르게 끝낼 수 있을 텐데 독서와 글쓰기에 쓰는 시간을 조금도 줄이지 않고 있고 가족 일에도 그 어느 때보다 열심이다. 이유가 뭘까 고민하던 차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당신은, 우리가 여기 온 건 갈탄을 캐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했어요. 그렇게 말했지요? 우리는 틈을 내어 노닥거리러 온 것이고, 핑계를 만들고 거드름을 피워, 마을 사람들이 돌아 버린 자식들이라고 토마토 던지는 짓 따위는 못하게 하자고 하지 않았어요? 우리 둘만 남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면 웃고 즐기자는 것 아닌가요? 내 말이 틀렸소? 맹세코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내가 바라는 것도 그거였는데, 내 마음을 나도 몰랐던 거예요.
-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조르바는 소설 속의 화자에게 고용되어 크레타섬에 온 인물이다. 갈탄 생각도 했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여자와 시간을 보내거나 화자와 시간을 보냈다. 조르바는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는 화자가 크레타섬에 갈탄을 캐러 온 것은 핑계고, 생각을 실행하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 말하자 큰 행복감을 느낀다.


나는 단기임대숙소 생각도 했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엔 독서 또는 글쓰기를 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과거의 나는 목표가 생기면 그걸 이룰 때까지 앞만 보며 달렸기에 일과 그 외의 것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적절하게 분배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었고 나에게 열정이 부족한 건 아닐까 생각하며 불안했다. 나는 사실은 독서와 글쓰기가 하고 싶었던 것인데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괜한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기에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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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가 생각났다. 지식인으로서 고통받는 주인공 하리는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삶을 보다 가볍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운다.


당신은 이 세상을 살기에는 한 차원이 높은 거지. 오늘날 자신의 인생을 즐기려는 사람은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이어서는 안 돼. 서툰 가락 대신 음악을, 향락 대신 기쁨을, 돈 대신 영혼을, 영업 대신 참된 일을, 장난질 대신 열정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이 아름다운 세상은 결코 고향이 될 수 없어.
–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지음


퇴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읽은 이 소설은 그동안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목표가 생기면 그것만 바라보며 최선을 다했고 목표를 이루면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게 허무해졌다. 그러면 나는 다시 목표를 세웠다. 나는 지나치게 진지했고 맹목적으로 열심히 살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때의 습관이 아직 남아있나 보다. 오픈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전적으로 몰입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자책했다. 오픈까지 한 달이 걸리든 두 달이 걸리든 내 인생에 그게 큰 문제일까.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짜 나’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백수로 살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 아웃풋을 낼 수 있는 활동에 시간을 쓰는 게 생산적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삶을 조금 가볍게 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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