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자아 찾기 (14)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를 읽으며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더라도 소설 속 조르바의 여성관에 경악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작년부터 읽은 고전 소설들이 전부 남성 작가가 쓴 남성이 주인공인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지음)을 골랐다. 유명한 소설이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소설이었다.
『오만과 편견』은 근대 초기 영국의 상류 중산층 여성들이 결혼이 거의 유일한 생존 수단인 사회에서 어떤 결혼을 선택할 것인가를 그린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며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이 떠올랐다. 『브리저튼』은 비슷한 시기의 영국 귀족 여성들이 사교계에서 결혼 상대를 찾는 내용을 다루는데, 여성들의 생활상이 『오만과 편견』과 비슷했다.
나는 두 작품의 주제보다는 작품 속 여성들의 일상에 더 관심이 갔다. 그들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은 모두 결혼 준비와 관련이 있었다. 낮에는 이웃을 방문하여 차를 마시며 사람들에 대한 소문을 교환하고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한 정보를 수집한다. 저녁에는 무도회에 참석하거나 관심 있는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식사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카드놀이를 하고, 대화를 하며 긴 시간을 보낸다. 그 외의 시간에는 편지를 쓰거나, 독서, 악기 연습, 뜨개질 등을 하며 교양 있는 신붓감이 되기 위한 소양을 쌓는다. 결혼 상대를 찾는 일은 당시 여성들에게 생존이 달린 치열한 일이었지만, 그들의 일상은 현대인의 삶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여유롭고 한가하다.
나는 ‘만약 『오만과 편견』, 『브리저튼』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고부터 너무 많은 정보가 원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들어오고, 모든 요청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게 당연해졌다. 중요한 연락을 안 받거나 대답이 늦으면 나의 잘못이 되는 것 같아 항상 온라인이어야 하는 기분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하는 일도 핸드폰 확인이고, 자기 전까지도 핸드폰을 본다. 더욱이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연락을 놓칠까 봐 핸드폰을 항상 진동도 아닌 진동+소리로 해놓게 되었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아주 긴급한 정보 전달도 편지로 한다. 중요한 일이나 걱정되는 일이 있을 때 빨리 소식을 듣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편지를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이미 일어난 일을 자기 안에서 소화하고, 감정을 가라앉힌 후 전달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현대에는 글쓰기가 취미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별로 할 일이 없는 글쓰기를 당시에는 글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했다. 편지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면 아무 제약 없이 너무 빠른 속도로 가벼운 메시지가 오고 가는 지금보다 훨씬 무게감 있는 소통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독서, 뜨개질, 산책으로 여가 시간을 보내는 삶은 어떨까? 나는 여가 시간에 독서, 글쓰기, 운동 등을 하지만 핸드폰은 쉴 새 없이 나의 정신을 분산시킨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핸드폰 알림이 오면 바로 확인을 하고, 무심코 핸드폰을 들었다가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는 것을 알게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 동안 핸드폰을 보는 일이 흔하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따분함을 견디다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깨닫게 된다’라는 말을 듣고 크게 공감했다. 지금은 따분할 틈이 없는 사회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매일같이 쏟아지는 온갖 흥미로운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 유튜브는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만 추천하며 나를 유혹한다. 나처럼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사람은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모르는 무언가가 계속 공유되는 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온갖 유혹을 견디더라도 스마트폰은 원치 않는 정보를 차단할 자유도 박탈한다. 카카오톡이 소음으로 느껴질 때가 많은데 업무적으로 중요한 일들도 카카오톡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1개의 중요한 정보를 위해 100개의 노이즈를 감당해야 한다. 친한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대화가 많이 쌓여 있을 때 제대로 읽지 않으면 나중에 단톡방에서 말했는데 왜 모르냐는 비난을 견뎌야 한다.
스마트폰 없이 독서, 뜨개질, 산책으로 여가 시간을 보내면 좀 더 나답게, 그리고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오만과 편견』, 『브리저튼』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좋은 결혼 상대를 구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을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하루일과를 보며 스마트폰 이전의 시대가 조금은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