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단타 일기장 16
지옥과도 같다. 쏟아지는 업무에 묻혀 금붕어처럼 숨을 뻐끔 쉬는 날이기도 하다. 아, 왜 나는 몸이 하나인 것인가. 내 분신이 여럿일 수는 없는 걸까. 숨 돌릴 틈이 필요할 때 마침 외근을 나갈 일이 생겼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팀장님의 뒤를 졸졸 쫓았다.
도착한 거래처의 내부를 자세히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지난번 미팅 때는 사무실만 보고 돌아오느라 안을 볼 겨를이 없었다. 생각보다 아담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체험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는 곳이었다. 지난주에 오고 오늘 또 와서 그런가 거래처에 대한 애정이 싹트는 기분이었다. 더 잘, 더 애정 있게 콘텐츠를 짜고 싶어 지는 마음.
업무 특성상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들이 많다. 대처도 빠르게 해야 하고 시간도 부족하다 느껴진다. 그래서 완벽함을 쉽게 포기하게 되는 듯하다. 내 만족을 채우기 위해 약속된 시간을 미룰 순 없는 노릇이다. 회사는 어떻냐는 팀장님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 혼자 하나의 몫을 해내고 싶은데, 아직 잘 안 돼서 죄송스럽다고. 팀장님은 수습기간이 그래서 있는 거라 대답하셨다. 스피드는 일에 적응하면 금방 늘지만, 정확도는 지금 잡지 않으면 나중에도 어렵다고.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나는 아직 짐만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일을 마음만큼 잘 해내지 못할 땐 모니터 보다가 울컥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런 나의 고민과 모습들이 팀장님의 말로 위로를 받았다. 당장 닥쳐온 어려움에 빌빌거리는 나지만, 누군가는 그런 나의 지진한 모습을 묵묵히 보고 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보내는 따스한 시선들이 있다.
지옥과도 같은 날에 잠시 쉴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