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외친 후
별안간 떨어진 이별에 정신없이 나를 탓하던 날들이 지나갔다. 놀란 스스로를 수습할 정신이 없었다. 이별이 추락한 곳, 그곳은 내가 가진 살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부위였다. 가진 돈 없음. 알고 있었지만 돌보지 않았다. 방치에 가까웠다. 어디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다. 무서웠다. 구멍 뚫린 항아리를 정성스레 닦아봤자 쏟아부은 물은 자리에 없을 터였다. 대신 나는 축축한 구멍을 더듬거리며 말하겠지.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내가 글을 처음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였다. '그냥'과 '어쩔 수 없지'와 같은 많은 맥락을 한 줄로 줄이는 문장을 쓰지 않으면서도 번듯한 문장으로 상황과 감정을 서술하고자 했다. 별안간 글을 쓰게 된 계기를 꺼낸 이유가 무엇이냐. 나는 현재 빚이 있다. 약 900만원 정도.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일 년 새에 만들어진 빚은 아니다. 20대 중후반부터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했다. 카드깡은 이자가 대단하다고 익히 들어 선택한 수단이 마이너스 통장이었다. 그렇다면 마이너스 통장까지 사용해야 할 정도로 나의 생활이 어려웠느냐, 그건 아니었다. 과한 소비 욕구가 불러온 스노우볼이었다.
자기계발의 명목 하에 40만원 대의 온라인 강의를 결제하고, 뚱뚱했을 시절엔 입지 못했다며 달에 2~3번은 옷을 사고, 건강한 몸을 가꿔야 하니 음식도 신경써서 먹어야 한다며 샐러드를 정기배송 시키고, 작가가 되려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며 각종 모임에 나가 돈을 썼다. 내가 모은 돈을 내가 쓰겠다는데 무엇이 문젠가 싶었다. 한편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생각했으면서 말이다.
스물 여섯에 처음으로 회사에 입사하며 그간 누릴 수 없던 것들을 모조리 해야만 했다. 어떠한 시절 속의 기억이 발목을 자꾸만 잡았다. 중학생 시절 집에 돈이 부족해 종합학원을 끊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라던가, 사고 싶은 옷을 보다가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포기해버린 고등학생의 나라던가, 증명과 결핍 속에서 나의 글이 과연 효용한 것인지를 고민하며 외줄을 탔던 대학생의 나라던가. 나를 형성한 복잡한 문제와 욕구들 사이에서, 돈은 쉬웠다.
돈을 쓰는 순간 만큼은 내 가치가 정직하게 증명되었다. 적어도 능력이 있으니 결제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돈은 나에겐 인풋과 아웃풋이 명징한 수단이었다. 불편한 미래를 개척하는 것보단 훨씬 간편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모은 돈은 없고, 900만원이라는 빚이 남았다. 물론 빚만 남은 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돈을 쓰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추친력 또한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편 소설이 출간되기도, 웹드라마로 수상을 하기도, 독립출판에 도전하기도, 그때의 모임에서 만나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는 인연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한 도전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이 생겼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이별을 겪으면서 생각을 달리할 기회라고 느꼈다. 삶을 다시 진단하고 과연 어떤 태도로 앞으로를 살아야 할지 정해야 할 시기라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정진'만 하던 나는 '정지'를 하는 중이다. 이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단 걸 잘 알기 때문이다.
3년 후 1억을 모으기 위해 빚 갚기를 먼저 하고 있다. 이 과정이 순탄치는 않다. 멀리 나갔을 수록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려면 반동이 크게 이는 법이다. 감정을 절제할 수 없고, 슬픔이 소비의 배경이 될 때면 다이어트를 하면서 배운 점을 떠올린다. 오늘 과식했다고 전부 다 망한 것은 아니다. 그거 아는가. 과하게 음식을 먹으면 한동안 음식이 또 보기가 싫다. 소비를 절제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일 거다. 예상치 못하게 돈을 쓰더라도 그때를 잘 지나가야 한다. 결국 나는 변한 게 없다며 탓을 한다고 사라진 돈이 돌아오진 않는다. 이 마음을 가지고 한동안을 또 살아가면 돈을 쓰고 싶은 순간에 제동장치가 생긴다. 이제 결제가 전처럼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