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찾아서

by 효용

봄볕에 나무가 무성해지듯 씨앗 하나가 이미 나의 한구석을 차지했다. 한때는 만화가였다가 한때는 소설가였다가 또 어느 날은 드라마 작가를 꿈꿨다. 명칭은 다르지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는 꿈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에, 발아는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전까진 부모님이 있는 서울 대신 외가에서 지냈다. 대전에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셋째 이모와 넷째 이모가 있었다. 가부장적인 외할아버지는 집보단 일터에서 시간을 오래 보냈지만, 주말이 되면 트럭에 외할머니와 손녀를 태워 목욕탕에 데려갔다. 뽀송해진 얼굴의 두 사람이 나오면 이마가 빨갛게 물든 할아버지가 차 시동을 걸었다.


조용한 차 안의 나는 적막함을 몰랐다. 할머니의 허벅다리에 엉덩이를 반쯤 걸쳐 앉은 채 어슴푸레한 어둠이 깔린 외진 도로를 바라보느라 바빴으므로.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몸이 붕 뜨는 감각과 내 허리를 팔로 굳세게 붙잡던 할머니의 힘이 교차하던 순간은 나도 모르게 흐흐 웃기 바빴으므로.


할머니는 다이어트 불호령이 떨어진 손녀에게 조금만 먹으라며 타박을 하다가도, 밥그릇에 반찬을 산처럼 쌓아주던 분이었다. 또 봄이 되면 봄동무침을, 여름이 되면 오이냉국을, 가을이 되면 김장을, 겨울이 되면 뼈해장국을 챙겨주던 할머니 밑에서 나는 무럭무럭 자라 부모님이 있던 서울에서의 일을 조금씩 묻어둘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있는 서울은 두 어른의 고성, 가끔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물건, 그 아래 이불을 뒤집어쓴 나의 반복이었다. 다른 자리에 누울 수 있는데도 굳이 두 사람의 가운데 자리를 고집했다. 두 사람은 자주 늦게 집에 들어오거나 한 사람은 날이 밝아서야 집에 돌아왔다. 혼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방에서 이불을 펴고 빼꼼 나온 발가락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발가락에 가린 현관문을 멀건이 보면서.


언제든 두 사람은 나를 떠날 수 있다,라는 무덤덤해진 믿음을 다정으로 깨트린 존재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다. 그리고 내 첫 과외 선생님이자 등하굣길을 매일 함께한 넷째 이모였고, 내게 처음으로 만화책을 빌려준 셋째 이모였다.


대전 집의 5분 거리에 10평 정도의 만화방이 있었다. 셋째 이모와 함께 들어선 만화방은 내 키의 두 배가 되는 책장이 벽면마다 붙어있었고, 책장을 옆으로 밀면 또 다른 책장이 나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매일이 보물을 발굴하는 시간이었다.


머리가 조금 큰 나는 외할머니의 돼지 저금통에서 동전을 꺼내 만화책방으로 달려갔다.(나중에 넷째 이모의 말로는, 할머니는 동전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가끔은 실수로 미성년자 구독 불가 책을 골랐다가 사장님 몰래 숨 죽이며 몇 장을 더 넘겨본 적도 있었다.


만화가 주는 무궁무진한 재미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그간 내게 시간은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면 만화책을 알게 된 이후엔 달랐다. 시간은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다음 권을 빌리려면 다음 날에 만화책방으로 가야 했으니까.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엄마와 하느님의 극적인 만남으로 집안이 부흥한 덕분이었다. 두 사람은 갈라서진 않았지만 집안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실망하진 않았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릴 적부터 염원이 된 기대가 이뤄지지 않는 밤은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지금의 형태가 엄마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구축된 점을 잘 알기에 기대보다 수용을 택했다.


견딜만했다. 집 근처엔 만화방이 있었고, 그곳엔 아직 읽지 못한 만화책이 한가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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