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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니들이 어떤 부분은 좀 몰랐으면 좋겠어

[하트시그널]과 [선다방] 영업글

by 썸머

초면의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며 연애감정을 키우고 짝을 짓는 서바이벌을 보는 게 처음도 아닌데, [하트시그널]과 [선다방]을 볼 때면 유독 마음이 간질거리고 조마조마해진다. 이런 프로그램 많았지만.. 아니, 이런 프로그램 있었나?


거슬러올라가보자면 어릴 때 일요일 아침이면 소파에 늘어져 가족끼리 보던 [사랑의 스튜디오]가 있었다. 결혼적령기 남녀가 나와서 서로 소개하고 간단한 게임을 한 뒤 사랑의 작대기를 서로에게 쏘아보내 짝을 짓는 내용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예전 방송회차에서 커플성사가 된 이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좀 시간이 지나 [짝]이 나왔다. 스튜디오에서 잠깐 하하호호하며 만나는 게 아니라 합숙하며 어색한 공기를 만들고 날선 감정을 내보이기도 해서, 종종 긴장감이 돌던 프로그램이었다. 두 프로그램과 형태는 많이 다르지만 [마녀사냥]도 그린라이트 판별에 힘쓰며 연애의 조건과 기술과 과정에 참 많은 가르침(?)을 선사했다. 잠깐 스쳐간 프로그램으로 [이론상으로 완벽한 남자] 같이 소개팅어플의 알고리즘을 예능식으로 푼 것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이런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은 연애감정에 빠지는 과정을 점차 정교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랑의 스튜디오]가 “단체 미팅을 해보니 이 사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라면, [짝]은 “며칠동안 일어난 이러한 일과 저러한 사건과 이러저러한 감정 변화로 인해 이 사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이 되었고, [마녀사냥]은 “그 사람과 이런 관계의 역사가 있었고,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때 그 사람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과 행동을 내게 해서 나는 이 사람이 마음에 드는 데 어쩔까요?”, [이완남]은 “이 사람이 조건 a는 충족, 조건 b는 반쯤 충족, 조건 c는 대체로 충족, 조건 d는 완벽 충족하여 내 이상형입니다”인 것. 연애감정을 확정짓기까지는 더 많은 단서들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트시그널]은 좀 더 나노단위로 내려간다. 눈의 마주침과 동공의 움직임, 발화 속에 숨은 뉘앙스와 목소리의 고조, 손짓과 발의 위치, 서로의 자세를 모방하고 대화의 핑퐁이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움의 정도, 이런 것들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가끔은 미장센과 플래시백에 공을 들인 드라마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선다방]은 이것보다는 무디지만 역시나 섬세한 것들에 주목한다. (지난 화에서 맞선녀가 끊임없이 빨대를 휘젓는 것이 중요한 시청 포인트였다.) 둘 다 공통적으로 출연자의 인터뷰를 없애서 “그때 제 행동의 의도는 이거였고 상대의 그런 반응에 지금은 이런 감정이 들어요”라는 친절한 자기중계를 들을 기회가 없다. "나는 현우 오빠에 대해 언니들이 어떤 부분은 좀 몰랐으면 좋겠어"라는 임현주의 고백 정도가 (호감을 명시하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가장 명확한 메시지일 것이다.


그리하여 모호한 신호들만 남는다. 로맨스의 스투디움 대신 풍툼을 발견하는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임현주가 김현우의 팔꿈치 옷을 손가락으로 살짝 잡아당기는 것은 어떻고, 김현우가 오영주를 일별하는 순간의 묘한 기운은 무엇인가?! 그래서 나는 두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심리학과 정신의학까지 동반한 많은 주석들을 달며 누가 누굴 좋아하는지 맞추는 부분은 노잼이라 스킵한다. 복잡한 감정의 자장을 단순한 화살표나 하트 모양으로 손쉽게 바꾸는 것, 식상해.


두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곳곳에 던져진 로맨스의 섬세한 단서들을 예민하게 좇고 일말의 가능성이 생겨날 때마다 설레거나 쓸쓸해지는 경험이다. 나는 두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짯짓기 프로그램의 진화/변화가 혹 오늘날 사회적으로 연애의 조건이나 환경이 척박해지는 한편 진정성 또는 자기감정에 충실하라는 요구가 높아지는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걸까 생각해본다.... 그치만 생각은 귀찮고 그들이 주고받는 시그널을 좀 더 보고 싶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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