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루머의 루머] 영업글
해나가 자살했다. 그리고 카세트 테이프가 학교 친구들에게 전달된다. 테이프 안에는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죽음의 원인이 된 13명을 지목하는 해나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여기서부터 스포주의.) 시즌 1을 보고나면 해나의 자살에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동급생 브라이스에 의한 강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12명은 해나가 강간의 위협에 취약해지도록, 학교의 공식적인 slut이 되도록 조금씩 말을 보태고 행동을 보탠 이들이거나, 그런 해나의 곁을 충분히 지켜주지 못하고 실망시켰던 이들이다. 얼핏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하이틴 드라마 정도 되어보이는 것으로 시작했던 이 드라마의 주제는 사실 성범죄다.
시즌 2에서는 해나의 죽음의 책임을 규명하는 재판이 벌어진다. 테이프 속에서 지명된 인물들이 하나씩 증언의 자리에 불려나오고, 각자가 지닌 진실은 해나의 진실과는 또 다르다. 해나도 누군가를 괴롭히는 데 가담한 적도 있었고, 이성관계와 성관계에 적극적인 탐구자가 된 적도 있었고, 친구들과 일탈을 즐긴 적도 있었고,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까다롭기도 했다. 여고생으로서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었던 해나의 언행들이 해나가 강간 피해자가 된 후부터는 재판에서 취약점이 된다. 해나가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이, 해나가 성적으로 순결하지 않았다는 것이, 해나가 늘 다정하고 행복한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이 해나의 피해를 규명하지 못하게 만든다. 재판은 가해자의 가해 여부 및 정도를 규명하는 과정이 아니라 피해자의 자격을 규명하는 과정으로 흘러간다.
미투가 일어난 이후로 친구들을 만나 직장내의 또는 지인에 의한 성희롱/폭력 사건을 들은게 한 서른마흔다섯번쯤 된다. 그중에 충분한 사과나 해결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은 바 없다. 진짜 웃긴 게, 사건 전까지는 인간관계 및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이 다정하고 잘 웃고 그 어떤 거부도 하지 못하게끔 판을 짜놓고는, 사건 후에는 여성이 다정하고 잘 웃고 거부를 잘 못했다는 점을 치명적 약점으로 삼는다는 거다. 또 사건 도중 또는 직후에 피해자 여성이 전문가 수준의 법률 지식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능력과 치밀한 분석력을 갖추었으리라 기대한 채로 사건 해결이 진행된다. 피해자가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자는 충분히 피해자가 되지 못한다. 왜 더 단호하지 못했는지, 왜 증거를 남기지 못했는지, 왜 그렇게 대처했는지를 묻는 식의 사건 해결 과정에서 상처받지도 자책하지도 않고 버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왜 이렇게 피해자가 무한한 용기를 내야할까.
재판에서 패소한 해나의 어머니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 딸은 완벽한 범죄 피해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건 세상에 없어요. 해나는 아름답고 어린 소녀였습니다. 삶과 꿈, 열정, 두려움, 결점으로 가득했죠. 여느 십대 소녀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