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키드 아이팔레트

2월 3주의 즐거움

by 썸머

눈화장을 본격적으로 욕심내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번째는 구정이 지나며 한국식으로도 한 살을 더 먹어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 것. 이미 성인 여성인지는 십 년이 되었으나 더욱 어른 여성 같은 걸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결코 저렴하지 않은 아이섀도우 팔레트를 새로 장만한 신용카드로 사서 밋밋한 눈을 고혹적인 색으로 채워넣는 것은 매우 도시 어른 여성 같은 일로 여겨졌다. 두번째 이유는 첫번째 이유와 모순되게도 어느 10대 소녀의 화장을 지켜보면서 받은 자극 때문이다. 요즘 10대들이 웬만한 2,30대 여성보다 더 예쁘게 화장을 잘 하고 다닌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우연히 유튜브에서 나이보다 더 앳되보이는 고등학생 소녀가 눈화장하는 브이로그를 이상한 감정으로 한참 구경했다. 나보다 어린 쟤가 가진 손재주를 나는 더 일찍이 습득하지 못한 것이 좀 분했달까. 여성이 화장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화장대 앞에 앉아 시간과 공을 들여 얼굴 내에서도 좁은 한 구석에다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여성으로서 해보고 싶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참에 우연히 발견한 시코르 매장에서 지난 몇년간 '예쁜데 나한테는 쓸모가 없어'라고 생각했던 어반디케이 네이키드 아이팔레트의 진열대를 찾게 되었다. 각각 12개의 색이 들어가 있는 네이키드 1, 2, 3, 히트 네 종류의 팔레트가 펼쳐진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볼펜이든 넥타이든 수건이든 깔별로 나열된 광경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채도 차이는 별로 없지만 다양한 색의 섀도우가 늘어서 있는 장면도 즐거운 광경이었다. 하나하나 내 눈에 얹어 상상을 해 본 뒤 네이키드 히트를 구입.


막상 집에 와서 펼쳐놓고 보니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자동으로 색조합이 되어 있어서 슥 찍어 슥 바르면 된다는 3초 섀도우인지 뭔지 하는 거나 살걸, 크레파스도 아닌데 뭐하러 열두색 들이를 샀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왕 화장하는 여성이 되어보기로 마음 먹은 거, 블로그의 팁과 튜토리얼을 뒤적여 마음에 두는 두 가지 튜토리얼을 찾아서 한쪽 눈씩 해보았다. 하나는 마음에 들고 하나는 망했다. 그러나 결과에 상관 없이 눈 한 쪽에 여러 개의 색을 여러 번의 붓터치에 나누어 정성들이고 있다는 그 과정 자체가 매우 흡족했다. 굳이 돈들여 산 화장대에 꼴랑 3분 앉아서 척척 찍어바르는 거 말고, 음영과 톤과 깊이 같은 걸 생각하며 한참 내 눈두덩이를 들여다보는 그 과정. 이것만으로도 하루를 바쁘게 대충 사는 것 같지 않고 공들여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KakaoTalk_20190224_131255324.jpg 예레기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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