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님은 내게 용돈을 따로 주지 않았다. 내가 밖에서 몰래 군것질을 할까 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명절에 받은 뭉칫돈이 있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회포를 풀 수도 있었다. 나는 1형 당뇨와 함께 했을 때부터 슈퍼마켓에 방문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편의점이 어색하다. 그런 나에게 이 어색한 친구와 평생 잊지 못할 2가지 추억이 있다.
어느 날 집 앞 슈퍼마켓에 있는 오락기로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슈퍼마켓 근처다 보니 군것질에 대한 유혹이 흘러넘쳤다. 친구들이 하나씩 골랐기에 나도 소소한 것을 하나 집었다. 그것은 ‘Let it be’라는 명곡을 만들어 낸 영국의 전설적인 그룹과 이름이 같은 새콤달콤한 젤리였다. 나는 입이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먹으려고 했다. 그렇게 몇 개를 나의 치아로 잘근잘근 씹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무섭게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우리 엄마였다.
눈에서 레이저를 쏠 기세로 나에게 다가오는 엄마 때문에 내 손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엄마는 내가 먹던 것을 빼앗아 집으로 들고 가서 냉장고 문에 붙여놨다. 이것을 보고 반성하라는 의미였다. 조금만 먹을 생각으로 샀던 건데 반성하라니 내 안에서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상금까지 빼앗겨서 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지고 만다. 억울함 때문인지 내 안에서 먹을 것에 대한 욕구가 더 샘솟았다. 나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집 앞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눈이라도 호강하자는 생각에 나의 눈은 군것질거리를 빠르게 스캔했다. 그 순간 누군가 나에게 하나 집어가라는 달콤한 말을 건넨 것 같았다. 곧이어 나는 초콜릿 과자 하나를 주머니 속에 넣고 유유히 빠져나가 놀이터에서 과자를 맛있게 먹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조마조마했지만 꿀맛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작업은 순조롭게 성공하는 듯하였다.
나는 며칠 뒤 같은 곳에서 똑같은 수법으로 작업을 시도했다. 두 번째도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런데 범인은 범죄현장에 다시 나타난다고 했던가. 나는 놀이터에 다시 가서 혼자만의 파티를 즐기려 했다. 과자봉지를 뜯은 그 순간,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바로 슈퍼마켓 사장님이었다. 사장님은 지난번에도 내가 훔쳐간 것을 알고 있었다. 슈퍼마켓은 엄마도 종종 방문하던 곳이라 사장님은 나의 범행을 눈 감아주기보단 엄마에게 이실직고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나를 위해서라도 부모님께 이야기하는 게 맞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범행이 발각된 이후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이하였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혼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우리 아버지는 엄한 분이어서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따끔하게 말씀하는 분이었다. 나는 언제쯤 폭풍우가 몰아칠까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집안 분위기는 평온했다. 그렇게 나의 범행은 잊히는 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외출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있던 주말 아침이었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평상시와 다른 어조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이때 나는 올게 왔구나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먹고 싶은 게 많았구나. 그러면 사달라고 하지
아버지는 이런 말씀과 함께 나를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우리 부자의 눈에서는 뜨거운 무엇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야단치기보다 사랑으로 감싸주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부모님의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닥치면 처음엔 눈앞의 현실에만 주목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야 그 너머의 것이 두 눈에 들어온다. 그 당시 나는 마음대로 먹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나는 2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억누르기보다는 적절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두 번째, 극한 상황까지 자신을 밀어붙이면 한계를 알게 되고 진정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물이 끓고 있는 냄비 뚜껑을 열지 않으면 물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우리의 욕구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방법으로 그것을 해소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자신의 욕구를 건전하게 달랠 줄 아는 것은 우리 삶에서 중요하다. 1형 당뇨 발병 초기에 나는 식욕을 억누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지금은 나의 식욕을 적절하게 다스리는 것에 초점을 맞춰 관리하고 있다. 먹고 싶은 것을 과하지 않게만 먹는다면 내 입의 행복과 건강 둘 다 잡을 수 있다.
극한 상황까지 자신을 밀어붙이는 게 꼭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계를 알게 되면 자신에 대한 이해심이 깊어질 수 있다. 우리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식욕이라는 일차원적 욕구를 눌러보니,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어느 정도 절제했을 때 희열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 야식의 유혹을 뿌리치고 다음 날 자고 일어난 경험이 있는가? 나는 입과 뇌의 식욕중추를 만족시키기보다 다음 날 좋은 컨디션을 위한 선택을 했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 더불어 그런 나날들이 일상이 됐을 때 자존감이 1g이라도 높아진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나를 마주하고 나를 잘 알게 된다면 우리의 시간에 ‘행복’이라는 퍼즐이 맞춰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