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형 당뇨 발병 이후, 나는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지금이야 알려진대도 크게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순진한 아이의 마음은 세상의 상처에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기에 작은 상처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무슨 일이든지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인해 나의 이야기가 주위에 알려진 사건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어릴 때 장난기가 많은 소년이었다. 짓궂은 장난을 많이 쳐서 친구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친구들아. 그땐 정말 미안했어.) 어떻게 보면 이 장난기로 인해 나의 비밀이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다. 어떤 일이 있었냐고?
어느 날 수업시간이었다. 내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앞에 앉은 친구는 설 씨 성(姓)의 아이였다. 이 시절엔 유치 찬란하지만 성(姓)으로 시작되는 별명으로 친구를 부르는 것이 국룰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그를 '설렁탕'이라고 부를 때가 종종 있었다. 설렁탕은 그날따라 목이 말랐는지 물을 많이 마셨다.
이 광경을 본 나는
"설렁탕이 물을 마시네? 국물이 싱거워서 못 먹겠다."
라고 말하며 웃으면서 장난을 쳤다. 그러자 내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처음엔 설렁탕도 가볍게 넘기는 것 같았다. 남을 웃겨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해피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고 싶은 욕구 말이다. 맺고 끊는 것을 잘했어야 했는데 나는 눈치 없이 더 깐족거렸다. 그 순간 수업 도중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보글보글 끓어서 넘치기 일보직전인 설렁탕처럼 이 친구도 열이 받았는지 손을 들고
"선생님! 뒤에서 저를 비웃으며 놀려요!"
라고 말을 해버린 것이다.
나는 속으로 1절만 할 걸이라고 말하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담임선생님은 수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에게 무릎 꿇고 벽 보면서 팔을 들고 있으라는 벌을 주었다. 다행인 건 조금 있으면 수업도 마쳐서 집에 갈 시간이었다. 그렇게 들고 있던 팔이 아파올 때쯤, 선생님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당뇨도 걸려서 아픈 애가 수업시간에 뭐하는 짓이니?"
선생님은 손이 아닌 입으로 사람의 뒤통수를 아주 세게 후려치는 능력이 있었다. 나의 일부인 당뇨를 장난친 것과 연결 지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때 내 안의 오장육부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흘러넘치더니 나의 눈을 통해 배출되었다. 4 딸라행님으로 유명한 김영철 배우님이 남긴 명대사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당시 나의 기분은 이 대사 하나만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선생님은 나의 눈물을 보고서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나를 타이르는 대신 내 마음에 집중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장난으로 시작됐던 상황은 흘렀던 눈물이 마를 때쯤 수업이 종료되면서 일단락되었다. 일어선 나는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몇몇 친구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느꼈다.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를 보는듯한 눈빛이었다. 위로를 해주는 이도 있었지만 난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짧은 순간에 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으며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거 자체가 싫었다.
수업시간에 장난을 쳐서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내가 잘못한 부분이니 따끔하게 혼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건강 상태를 나의 행동과 연결 지어 질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물론, 선생님도 사람이기에 모든 것을 다 사랑으로 포용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의 잘못을 더 나은 방법으로 반성하게 해 줬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혼자 간직하고픈 이야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연필로 쓱싹쓱싹 노트에 옮겨적으며, 소곤소곤 털어놓는다. 그럴 때마다 연필과 노트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나의 말을 들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이 노트가 세상에 공개된다면 어떨까?
처음에는 뇌가 가출하여 어안이 벙벙할 것이고 집 나갔다 돌아온 뇌는 제 구실을 당분간 못할 것이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 세상 공기조차 싫어지면서 지구 밖으로 떠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혹자는 ‘시간이 약이다’ ,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힌다’와 같은 말로 위로한다. 내 경험상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과거 마음속 상처는 시간 속에 희석될 뿐 흉터가 남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흉터가 남기 전에 딱지를 계속 들춘다면, 통증과 함께 피고름은 덤으로 따라올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 상처를 꾸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