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나서 다른 생각을 하는 존재다. 이 당시 나의 비밀을 알게 된 친구들 중 나에게 위로를 전한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나의 아픔을 함부로 대해서 내 기분을 상하게 한 친구도 있었다.
나에게 1형 당뇨가 있다는 사실이 처음 공개됐던 자리에 있었던 문성(가명)이라는 친구는 중학교 입학 첫 해에 같은 반이 되었다. 문성이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반을 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나와는 결이 좀 달랐다.
어느 날 문성이가 친구의 물건을 빌렸는데 이것을 험하게 써서 망가뜨린 적이 있었다. 이때 나는 진심을 담은 사과보다는 돈으로 해결하려는 문성이의 모습을 목격했었다. 자신이 잘못한 행위에 대해서 대처하는 방식이 그 사람의 면모를 드러내는데, 내 눈에 비친 문성이의 모습은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 친구와 나는 한 공간에 있었지만 연결고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수업시간에 또 예상치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청각 자료를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내용은 건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영상 중간에 당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영상의 요점은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나이가 들어서 만성질환이 생기는데 당뇨가 흔하게 발생한다'였다. 더불어 당뇨 발병 이후 제대로 관리가 안 되면 합병증으로 인해 발을 절단해야 된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교실 내로 퍼졌다. 나는 알고 있던 내용을 한번 더 확인 사살하게 된 거라 쓰디쓴 99% 다크 카카오를 맛본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순간 무엇인가 훅하고 날아와 어퍼컷을 날렸다.
그것은 문성이의 비웃는 듯한 표정과 말 한마디였다. 나와 같은 열에 앉은 문성이는 가장 앞 쪽에 위치해있었다. 그로부터 뒤로 2번째에 앉아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당뇨합병증에 관한 영상이 나오고 있을 때, 문성이는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할머니도 당뇨로 인해 발을 절단할 뻔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질문의 화살이 나에게로 날아왔다.
“야. 너도 당뇨가 있는데 괜찮냐?”
라고 묻는 것이었다.
이때 나에게 질문을 던졌던 이 친구의 표정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문성이 얼굴은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 상태에서 가소로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너무 분해서 눈물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본 문성이와 주위 친구들은 약간 당황한 듯 보였다. 아이들은 문성이를 질책하면서 나를 달래주었다. 친구로서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아픔을 함부로 대하는 그 모습에서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나는 과거나 현재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거나 함부로 대한 적은 없었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보석에 대한 문외한도 다이아몬드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다이아몬드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정복할 수 없다’는뜻의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약 지하 150km에서 매우 높은 온도와 압력 조건에서 탄생한 다이아몬드 원석은 지구 구성물질 중 가장 단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억센 조건에서 탄생한 원석은 정밀한 가공을 거쳐야 무색투명의 다이아몬드로 다시 태어난다.
우울, 분노,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경험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우리에게 선물이 될 수도 있다.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은힘든 가공과정을 거쳐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다채로운 광휘(光輝)에 있다. 즉, 우리를 힘들게 했던 과거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여러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만드는 새콤달콤한 양념이 될 것이다.
살다 보면 내 마음에 상처 내는 이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이 당시 나는 마음을 다독이는 방법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 나처럼 췌장이 고장 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마치 쿵하고 차를 박아서 교통사고가 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이 억울했으며 나의 존재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람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태어나는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하면 나 혼자 세상을 등지며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그 결과 자신을 사랑하게 된 ‘지금의 나’가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이 자신의 과거로 인해 힘들어하는 상대방에게 했던 대사가 있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생각하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