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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May 24. 2018

중국 택배 경험담 (1)

일과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중국인들

예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을 재탕 중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생긴 만성 비염으로 숨 쉬기가 약간 힘든 나한테는 중국의 스모그는 최악의 짝꿍이다. 그래도 그동안 장강 이남은 북중국보다는 공기 질이 양호해서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봤자 150정도에 불과했다. 몇 년 전 북경의 미세먼지 수치가 600정도를 찍은 것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올 겨울 강추위가 몰려오면서 덩달아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졌고, 지난 주에는 250을 넘었다. 북쪽에서 한파를 몰고 온 북동풍이 대기 오염 물질도 한가득 담아왔는데, 남경이 분지인지라 이게 해소되려면 얼마 전 폭설과 같은 특별 이벤트가 아닌 이상 거의 해소가 안 된다.  


    “저게 사우론의 탑이지 암만." 


    아침에 도서관으로 갈 때 콧 속을 끈적한 기운이 간지럽힐 때마다, 스모그로 덮혀서 뿌옇게만 보이는 주변 아파트 단지들을 보며, 베란다에 달린 온풍기가 왱하고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내뱉는다. 이 동네는 한국처럼 난방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여름에는 에어콘으로 사용하는 온풍기가 전부이다. 물론 일 년에 서리 한 번 보기 어려운 동네에서 난방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평년 최저 기온이 영하 1~2도 정도 밖에 안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윤한 기후의 냉풍은 체감온도를 급격하게 떨어뜨린다. 한국에서는 종종 반팔에 파카만 걸치기도 하는데, 여기서 그러는 건 날 동태로 만들어쥬슈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동남아에서 한파가 닥쳐 영상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져 사람들이 동사했다는 게 빈말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두 주 동안 여기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 갔고, 덩달이 미세먼지 지수도 250을 상회했다. 이는 한국으로 치면 영하 20도의 추위에도 난방을 하지 마쇼라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온풍기를 틀면 외부의 대기 오염 물질이 실내로 대거 유입되는 참사를 빚기 때문이다. 그래서 걍 그 동안 온풍기를 틀지 않는 대신 걍 내복에 핫 팩을 붙인 뒤 옷을 껴입고 잠을 청했었다.  


하지만 그저께 잘려고 누웠는데 불현듯 호흡이 약간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느꼈다. 특히 웃풍이 불어올 때마다 이런 증상이 심해졌다. 


“신발 웃풍에 미세먼지가 실려 들어오는구먼…”  


이에 이불 속에서 맛폰으로 타오바오 앱을 키고 공기정화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15만원 정도 하는데 할인해서 10만원에 파는 것이 있었다. 냉큼 결제했다. 한국도 카카오페이나 삼성페이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처럼 이불 속에서 맛폰을 몇 번 터치만 하면 원하는 상품을 구매하는 일이 아직 자연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타오바오 앱에 이틀 후에 구매하신 공기정화기 택배가 도착할 거라는 소식이 떴다.  


“젠장 이틀 밤이나 호흡 곤란으로 고생해야 하다니….” 


자는 둥 마는 둥 잠을 설쳐 골이 띵한 상태로 학교에 갔다. 타오바오 앱을 키고 간밤에 구매한 공기정화기가 창고에서 반출되었는지 여부를 살펴봤다.  




    "응 벌써 남경시 이 동네 택배 사무소에 도착했다구?” 


    저 공기청정기를 판매하는 인터넷 상점이 남경에 본부를 둔 쑤닝苏宁인지라 이틀이 아니라 하루면 오겠지하고 함 물류 현황을 검색했는데, 벌써 바로 근처까지 도착했다는 걸 보고 놀랐다. 그런데 물류 현황을 자세히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당 물품을 새벽 2시에 창고에서 반출하고, 아침 7시에 택배 회사로 넘겼단다. 중국에서도 택배 상하차 작업이 야간에 이루어지긴 한다. 그런데 밤 12시 반 경에 맛폰으로 구매 신청한 물품을 곧바로 새벽 2시에 창고에서 반출한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중국 사람들은 칼퇴근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었다. 지금도 중국 여친은 가끔 야근을 한다는 소리만 들리면 입이 대빨 나와 툴툴거린다. 반면에 쑤닝 인터넷 상점은 24시간 운영이 되는 뽐새다. 하긴 저번 금요일에 여친이 항주의 알리바바, 그래 마윈의 회사로 유명한 그곳으로 이직하기 위해서 면접을 보러 갈 때 따라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근처 모처에서 책 보며 기둘리고 있는데 여친이 면접관이 약속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다고 문자를 보냈다. 응? 나중에 항주의 서호 모처 술집에서 여친과 맥주를 마시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다. 여친왈, 면접관이 갑자기 회의가 생겨서 어쩔 수 없다고, 자기는 불금에도 야근한다고 오히려 하소연을 했단다. 나중에 항주 택시 기사도, 항주 사는 여친 언니네 식구들도 다들 그거 알리바바는 밤에도 불이 안 꺼지는 회산기라..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중국의 노동 문화가 점차 노동자보다는 고용주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한 밤 중에도 열일하는 쑤닝 인터넷 상점이 타오바오 앱으로 보낸 소식은 이를 확인시켜주었다.  


    알바도 하고 공부도 하다가 어느덧 오후 네 시가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공기청정기가 배송되었다는 소식이 뜨지 않았다. 이에 타오바오 앱에 링크된 택배 기사 전화 번호로 연락해보니 아직 배달이 끝나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원래라면 저녁 5시 쯤에 학교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도서관에 가야 하는데, 내 폐의 건강을 위해서 집에서 여섯 시까지 꼬르륵하는 배를 잡고 기다렸다. 아침 9시에 근처 물류센터에 배송된 택배가 저녁 6시에 비로소 집에 도착한 셈이다. 창고에서 물건을 반출해서 근처 물류센터까지 오는데 7시간 밖에 안 걸렸는데, 물류센터에서 수령인에게 배송되는데는 무려 8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아마존을 통해서 사천성의 어느 인터넷 서점에서 1월 26일 저녁에 紙屋正和의 《漢代郡縣制的展開》를 구매했고, 27일에 남경에 도착했지만, 내 손에 들어 온 것은 28일 아침이었다. 중국 각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망의 발달은 비단 사람을 수송하는 것 뿐만 아니라 물자 운송에도 획기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오히려 각 지역의 물류 센터에서 수령인에게 물건을 배송 완료하는 시간이 꽤 걸린다. 저번에 여친과 잡담을 나누다가, 그녀의 북경 동료가 택배 물건을 받는데 예전에는 하루 이틀이면 되었지만, 요새는 사나흘, 심지어는 일주일씩이나 걸린 적도 있다고 투덜거리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북경과 다른 도시들 사이의 교통망이 점차 확충되면 되었지 갑자기 박살나지는 않았을 텐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하지라고 궁금하던차에 이번에 책과 공기정화기 택배를 주문하면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북경에 살지 않기 때문에 직접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이는 물건이 북경 모처에 있는 물류 센터까지는 잘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구매자들에게 배송되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리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저런 추리를 하고 있을 때 문득 예전에 관련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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