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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May 29. 2018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황개의 거짓 항복에 속은 까닭은?

예전에 블로그에 올린 글을 재탕했습니다.




    

    적벽대전시 조조군 진군로를 함 그려봤다. 그런데 정말 깊숙히도 들어왔었네. 하지만 장소가 출병을 반대한 것도 이해는 간다. 왜냐하면 아무리 수로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건업에서 형주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았고, 오히려 조조의 형주 침공 전진기지인 양양襄陽, 즉 신야와 번성 근처에서 강하까지 더 가까웠다. 뿐만 아니라 이미 조조가 형주의 정예 수군을 확보하였고, 양양에서 바로 강하까지 평탄한 육로로 치달을 수 있지만, 손권군은 장강 수계를 통해서만 강하에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나라 군대가 장강의 지리적 이점을 잘 살리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장소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우니 노숙이 손권에게 우리는 항복해도 별 상관은 읎는데 당신은 쫄딱 망할 거라고 격장지계를 펼쳤던 것 같다. 사실 노숙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몇몇 오나라 신하들도 정말로 그런 마음을 품었을 것 같고, 조조 역시 이를 간파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마침 황개가 다음의 편지를 보내면서 항복을 청해왔다.  

    “저는 손씨 가문의 후한 은혜를 받아 장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천하에 돌아가는 대세를 보니 강동 육군과 산월의 사람들만으로 중국의 백만 대군에 맞서려고 하니 중과부족이며, 이는 해내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바입니다. 동방의 장리將吏들도 어리석지는 않아 모두 이것이 불가능함을 압니다. 그런데 오직 주유, 노숙만이 천박하고 어리석어 뜻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투항하는 것은 진실된 계획입니다.”(《삼국지 - 오지 - 주유전》) 

    원소, 여포를 차례로 격파하고 형주 북부도 순조롭게 접수한 조조는 자신감이 넘쳤을 것이다. 실패라는 것은 상상조차 못 했을 수도 있다. 이에 의심병으로는 제일 가는 조조라고 하더라도, 황개의 항복이 자신이 예견한 오나라 군신들의 분열 사태를 증명할 뿐만 아니라, 당시 조조군내에 역병이 돌아 사망자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계는 커녕 천우신조에 가까운 희소식이라 하면서 냉큼 그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적벽에서 백만대군은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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