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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May 03. 2020

유학儒學과 시민의식의 고양 그리고 코로나 방역

Laura Bicker라는 BBC 기자가 올린 한국이 코로나 방역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학가 아니라 이 나라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라는 트윗이 한 때 세간의 지지를 받으며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https://twitter.com/bbclbicker/status/1248924868927614976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코로나 방역을 위한 지역 봉쇄를 해제하라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시위를 보면 교육을 중시하는 유학적 전통이 코로나 방역에 일조를 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일단 지역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트럼프 지지자의 주장을 보면 미국의 공교육이 얼마나 붕괴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현대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상식이 탑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https://twitter.com/nowthisnews/status/1256679352495816704… ; https://twitter.com/BBCWorld/status/1256152186117070849?s=20;


“코로나는 그리 위험하지 않아!!”, “자유가 아니면 죽음!!!” 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지역 봉쇄 해제 시위자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기본적인 상식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계속된 봉쇄로 일자리가 폐쇄되고 이에 가구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에 걸리기 전에 굶어 죽겠다!!!”, 혹은 “독감의 유행으로 수 많은 사람이 죽어도 경제는 멈추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일견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코로나가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도외시하고, “나만 아니면 괜찮아” 혹은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다”라는 인식에서 발현된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극한 이기주의와 반지성주의는 일베나 신천지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적어도 공교육을 제대로 이수한 한국인들이라면, 저들의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의무교육이 근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유학적 전통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씨족 위주의 질서에 금이 가고, 능력이 출세 여부를 가름하기 시작했던 중국 춘추시대 말, 공자는 신분과 재산를 막론하고 누구나 원한다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으며, 실제로도 많은 빈한한 이들이 이 때부터 공부를 통해 실력을 키워 군주의 초빙을 받았다. 당대 과거제의 설립은 서민에게 부와 권력을 확보할 수 있는 관료라는 동앗줄을 제도적으로 제공하였다. 그리고 송대 이후, 미천한 백성들도 성인聖人으로 탈바꿈 시킬 수 있다는 유학의 이상은 사학의 발전을 촉진시켰고, 서민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였다. 이에 병인양요에 참전한 프랑스 장교가 조선인들은 가난한 집에도 책이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모든 인민이 고급 교육을 통해 관료 후보군이 되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은 오늘날 한국의 과열된 입시를 낳기도 하였지만,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사회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지식 수준이 최상위권에 도달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에도 자발적 격리와 신고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시킨 유례없는 시민 의식의 발전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한국의 유학적 전통은 이번 코로나 성공적인 방역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족을 달자면 기실 유학은 본디 혁명 사상이었다.


https://brunch.co.kr/@psybaster/17


지배자에게 충성을 다하되, 지배자가 지배자답지 못하면 갈아치워야 한다는 것이 유학의 신조였다. 다만 명청대 이후 국가 권력에 전용되어 지배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유학의 본질이라고 호도되기 시작되었고, 서양에 들어온 근대적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개인주의 말살의 원흉으로 지탄받기에 이르렀다. 비교하자면, 미국의 극우 기독교인들의 인종차별주의를 가리켜 이게 바로 원래 예수라는 자가 전파하던 복음이었다고 하는 것과 같다. 위에서 언급한 BBC기자 Laura Bicker도 아마도 유학을 이런식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와 유학을 대치되는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유학 이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왜냐하면 중공에서 공자의 이름을 빌려 그들의 체제를 선전하기 때문다. 일찍이 전목錢穆이나 여영시余英時 등의 학자들이 일찍이 유학적 이상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시나브로 매몰되는 것이 자못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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