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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Aug 05. 2020

《대학大學》이 말하는 인재 선발에 관한 방법

도덕성은 오히려 능력보다 객관적인 인재 선발 기준이 될 수 있다. 

종종 저녁을 먹기 전 집에서 삼십 분 걸리는 우석대로 산보를 간다. 한 낮의 더위가 어느 정도 가신 고즈넉한 분위기의 교정은 영어 회화 연습과 머리 속에 둥둥 떠다니는 화두 정리에 안성맞춤 이기는 하다. 그런데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토익 800점 단기 완성 코스나 9급 공무원 합격 축하 광고들이 눈에 거슬릴 때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광고들이 어쩌면 우석대 학생들 스스로도 모르는 잠재력을 억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내가 가르쳤던 국제 학교 학생 가운데 한 명은 매우 유려한 필치로 글을 쓸 줄 아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학생의 어머님은 학교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것만 한탄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자식의 진로는 오직 대학 입시 하나로 귀결되는 듯 했다. 어쩌면 덕분에 세계적인 대문호의 싹이 이미 뭉개졌는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우석대 학생들 중에서도 비록 어떤 영역에서 역대급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졸업 후 오로지 9급 공무원 시험에만 목매달다가 수험에 계속 실패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요컨대, 너무나 현실적인 목표에만 신경을 쏟아서, 헛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상을 품는 일 자체를 망각한다면, 잠재력은 영원히 발굴되지 못해 지하에서 썩어버리는 보물과도 같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이상적인 생각만 품는다면 돈키호테같은 행동만 일삼게 된다. 그래서 어떤 과제에 대해서 이상에 치우친 방법론 역시 비판을 받는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덕망이 있는 자가 최고 지도자가 되면 위와 아래가 각자 직분을 다해 세상이 교화되어 평화를 이룩할 것이다." 


남송시대의 주희朱熹가 《대학大學》을 정리한 뒤 쓴 서문을 한 마디로 요약해보았다. 유가 사상이 언급하는 세상 경영의 방법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이상적이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정치학자들이나 마키아벨리즘의 신봉자가 보기에는 순진해 빠진 관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유가 사상의 비판자들은 종종 저 이상적 방법론의 이면에 현실적 타개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예컨대《대학》본문에서도 이런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한다.  


“현명한 이를 보아도 등용할 수 없고, 등용한다고 하더라도 승진시키지 못하는 것은, 운명이다. 훌륭하지 못한 자를 보고도 퇴직시키지 못하고, 퇴직시켰는데도 멀리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대학》의 편집자도 훌륭한 이를 선발해서 국가의 요직에서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훌륭하지 못한 이를 퇴출시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이 조차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훌륭하지 못한 이를 어떻게 구별해서 물러나게 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국가를 국가 구성원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하는 이를 내쫓으면 된다.  COVID19로 인민들이 픽픽 죽어나가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선전하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유가 사상을 조금 깊게 공부한 사람이라면, 공자가 범죄를 저지른 이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눈 감아 줄 것을 요구했다고 지적하면서, 위에서 인용한 《대학》의 주장은 가족 중심의 인간 관계가 큰 위력을 발휘하는 한국과 중국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즉, 여전히 이상론에 불과할 뿐이라는 반론에 직면할 수도 있다. 분명 《논어論語》에는 이런 일화가 존재한다.  


섭공葉工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동네에서 정직한 사람이란, 그 아비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가서 증언하는 겁니다.” 


이에 공자가 말했다. 


“우리 무리에서 정직한 자는 이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기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깁니다. 정직이란 이 안에 있습니다. 


소위 법치를 강조하는 이들에게 유학을 비판할 여지를 주는 유명한 구절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가족의 이익을 위해 도둑질도 용인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大學》에 따르면 이 부자父子는 사회 지도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 가운데 자기 자식의 나쁜 점을 아는 이는 없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갈고 닦지 못해서 집안을 가지런하지 못하게 되는 일을 말한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적절히 이수한 이라면 소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은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제가齊家 즉, 집안을 가지런히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가정을 잘 운영해야한다는 말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누구만 편애하지 말고, 또한 눈엣가시인 이가 있어도 그의 장점을 인정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을 모두 동등하게 대할 수 있는 마음 능력을 가진 이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이민족이라고 차별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나라를 잘 다스려,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는 구절에 담긴 의미이다. 기실 공자가 활약하던 시기의 중국은 중국인과 주변 민족 간의 문화의 충돌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맹자》에 따르면 원래 은주혁명의 주인공 주문왕周文王은 서쪽의 오랑캐이고, 전설의 명군인 순舜 역시 동쪽의 오랑캐에서 왔다고 하였다. 이는 비록 출신이 이민족이지만, 덕과 능력이 있다면 중국사에서 가장 추앙받는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잘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만드는 방법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구성원이 어떤 배경을 가졌던 간에 객관적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동등하게 대할 수 있을까? 바로 훌륭함을 갈고 닦는데 핑계를 대지 않는 것이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만 훌륭한 척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장소에서도 이를 추구하려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덕이 온 몸을 감싸 모든 행실에 아무 부끄러움이 들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이들에게는 분노와 공포, 애착과 우환이라는 일그러진 마음 상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해서 사람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이론 역시 이상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관료 선발에 있어서 가능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과거제도가 일찍부터 출현하였다. 하지만 과거제의 단점, 즉, 시험에 통과한 이들 상당수가 남이 시켜서 하는 기계적 업무에만 충실할 뿐만 아니라, 도덕성도 갖추지 못하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즉, 과거제든, 대학 입시든, 공무원 시험이든지 간에 이것들이 비록 정량평가이기는 하지만 결국 주관적인 평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료가 되기를 지망하는 이들은 시험이야 말로 출세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경로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유가 사상이 통치 기조가 된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과거제와 그 변형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전통시대 관료 후보군은 난세가 도래하면 그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삼아 반란의 수괴로 종종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의 편집자는 국정 운영에 있어서 인재 선발은 우연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지만, 일정 수준의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이들을 퇴출시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시행할 수 있다고 여겼다. 게다가 도덕이 무너진 공동체는 붕괴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유가 사상은 유능함의 기준을 소위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도덕성에 두었다. 유능함의 기준은 정말이지 천차만별이지만, 도덕성의 기준은 확실하게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토익 800점, 높은 학점 등은 인사권자가 유능함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결국 단편적인 기준에 불과하지만, 만약에 공정성을 위해 이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면, 웹툰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같은 인물은 어떤 회사에서도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가 사상에서 요구하는 도덕성은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맹자》에서는 불행한 이에 대해 측은함을 느낄 수 있기만 하면 된다. 《대학》에서는 주변을 정리하는 법과 손님을 정중하게 접대하는 법을 익히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기본적인 문장력만 갖추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위정자에게는 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지만,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위정자에게는 아주 관대하다.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위정자는 언제 어디에서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을 해야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왔던 이가 조금이라도 일탈을 하면 위선자라고 매도 당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었던 위정자가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은 정직한 행동이며, 아주 가끔씩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타인을 위한 행동을 하면 아주 도덕적인 인물로 칭송받는다. 기실 유가 사상은 현실적으로 개인에게 그리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도덕이란 욕망에 의해 쉬이 이지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쩌면 공자가 섭공에게 가족의 범죄를 숨기는 것이 고발하는 것보다 정직한 행동이라고 한 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비로소 진정으로 타인을 측은해 하는 마음이 발동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유가 경전을 남긴 이들은 세상의 교화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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