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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Aug 16. 2020

한문 번역 사례 : 이상한 표점 하나가 일으키는 오독

중화서국본『한서漢書』「식화지食貨志」에 찍힌 이상한 표점

어느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든 간에 인쇄술이 보급되기 이전 시대에 생산된 사료 판본의 검토는 매우 중요하다.

중국사의 경우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서진 말 진나라 왕족들의 내란을 틈타 북방의 이민족이 침공한 영가의 난 등의 사건들에 의해 당시 사료들의 원본들이 소실되었다. 그래서 그 이전의 시대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료의 사본이나, 그 사료들을 일부 인용한 다른 책들을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 특히 인쇄술이 보급되기 이전의 사람들은 사본을 생산하거나 사료들을 인용할 때 일일이 손으로 베껴썼기 때문에 글자를 잘못 적거나 혹은 빼놓고 적는 일이 비일비재 했으며, 이 때문에 사료 원문의 내용이 왜곡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따라서 중국고대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다양한 사료들의 사본을 비교 검토해서 오류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근래에는 중국 고대사 연구, 특히 진한사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판본 교감 작업을 거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중화서국에서 웬만한 사료는 수집할 수 있는 모든 판본들을 비교 검토해서 출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화서국이 분명 권위가 있는 출판사이기는 하나, 그들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범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사료에 표점을 찍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참고로 표점이란 독자의 편의를 위해 한문 원문을 띄어쓰기를 하고 문장부호를 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한서漢書』「식화지食貨志」의 원문에는 아래와 같은 식으로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고, 문장부호도 달려 있지 않았다. 


 “自造白金五銖錢後五歲而赦吏民之盜鑄金錢死者數十萬人其不發覺相殺著不可勝計赦自出著百餘萬人然不能半自出”


그러나 중화서국본『한서漢書』「식화지食貨志」에서는 위의 문장에 다음과 같이 표점을 찍었다.


 “自造白金五銖錢後五歲,而赦吏民之盜鑄金錢死者,數十萬人。其不發覺相殺著,不可勝計。赦自出著百餘萬人,然不能半自出。”


위의 사료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백금과 오수전 제조가 시작된 뒤 오 년 후, 하급 관리와 백성들 가운데 몰래 백금과 동전을 주조한 죄로 사형을 당해야 할 이들이 사면을 받았고, 그 숫자가 수 십 만에 달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죄가 발각되지도 않았는데 살해를 당한 이도 셀 수 없었다. 스스로의 죄를 자백해서 사면을 받은 이들은 백 여 만 명이었는데, 자백하지 않은 이들도 태반이 되었다. ”


그런데 이 해석을 곰곰히 읽어보면 어딘가 이상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백금과 오수전 제조가 시작된 뒤 오 년 후, 하급 관리와 백성들 가운데 몰래 백금과 동전을 주조한 죄로 사형을 당해야 할 이들이 사면을 받았고, 그 숫자가 수 십 만에 달했다”라는 구절은 그 뒤에 이어지는 “그리고 그들 가운데 죄가 발각 되지도 않았는데 살해를 당한 이도 셀 수 없었다”라는 구절과 문맥이 맞지 않는다. 


우선 두 번 째 구절에의 제일 앞 부분에 있는 글자인 “其”는 첫 번 째 구절의 “~~~당한/당해야할 이”를 가리키며, 그 다음에 나오는 동사인 “發覺”, 즉 “죄가 발각되다”와 호응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첫 번 째 구절에서 언급된 이들이 이미 (죄가 발각되어) 사면을 받은 이들인데, 두 번 째 구절에서는 그들의 죄가 발각되지도 않고 살해를 당했다고 하였으니 서로 모순이 발생한다. 또한 저 두 구절 다음에 나오는 “赦自出著百餘萬人,然不能半自出”나오는 구절은 사면 대상이 스스로의 죄를 자백한 이들로 국한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 여사면呂思勉은『진한사秦漢史』를 편저하면서 해당 원문을 “自造白金五銖錢後五歲而赦,吏民之盜鑄金錢死者,數十萬人。其不發覺相殺著,不可勝計。”라고 표점을 찍었다. 이 표점에 따르면, 하급 관리와 백성들 가운데 몰래 백금과 동전을 주조한 죄로 사형을 당해야 할 이들이 사면하다[赦]라는 동사의 목적어로 걸리지 않기 때문에 사면 대상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뿐만 아니라, 사면 대상을 스스로의 자백한 이들로 제한시킨 그 아래 구절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여사면의 표점이 중화서국본의 표점보다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여사면의 표점에 의거하면, 위에서 인용한『한서漢書』「식화지食貨志」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백금과 오수전의 제조가 시작된 뒤 오 년 후 사면령이 내렸다. 그러나 하급 관리와 백성들 가운데 몰래 백금과 동전을 주조한 죄로 사형을 당한 이들이 이미 수 십 만에 달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죄가 발각되지도 않았는데 살해를 당한 이도 셀 수 없었다. 스스로의 죄를 자백해서 사면을 받은 이들은 백 여 만 명이었는데, 자백하지 않은 이들도 태반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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