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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Aug 17. 2020

중국사 시대별 한문 독해 난이도

예전에 남경대학으로 중국사에 관심이 많다는 어떤 분께서 어학연수를 온 적이 있었는데, 남경대 사학과 대학원생의 사료 읽기 세미나에 참석하셨습니다. 그 분께서는 종종 대학원에 진학을 해서 공부할지 말지에 대해 의견을 물으셨습니다. 물론 남경대 사학과 대학원생 일동은 아직 학부 졸업도 하지 않은 청춘의 미래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면서 극구 만류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은근슬쩍 자신의 세부 전공을 홍보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진한사 전공의 장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한시대는 사료가 이미 다 정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시대에 비해 한문 독해도 훨씬 쉬워서 날로 먹을 수 있다!!!!” 


정말이지, 제가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6 년 만에 박사 논문 초고를 완성하고 현재 백수로 뒹굴뒹굴 지낼 수 있게 된 것도, 진한시대 사료 장악과 독해의 난이도가 다른 시대에 비해 훨씬 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미나 당시에는 두서없이 말한 그 이유, 즉 중국사 시대별 한문 난이도를 글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난이도는 다음의 기준을 얼마나 많이 충족하느냐에 따라 정했습니다.  


  

    글자 자체의 해독이 안 되는 것   


    글자 자체는 해독이 되지만, 사전에는 잘 나오지 않는 단어가 꽤 있는 것   


    사전을 찾으면 뜻을 찾을 수 있지만, 사전을 졸라리 많이 뒤벼봐야 하는 것   


    문체 자체가 해독하기 어렵게 만연체로 쓰인 것   


    글쓰기 솜씨가 떨어져서 명료한 문체로 쓰지 못한 것      


5점 스케일로 채점을 했습니다. 1점이 가장 쉬운 것이고, 5점이 가장 어려운 겁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과 편견을 근거로 쓴 글이니 이런 의견도 있구나 하고 재미삼아 읽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1.상나라 갑골문 // 주나라 금문 // 춘추전국시대 육국문자// 진나라의 소전 (4점) 


한나라 이전의 한문은 보통 고문자라고 해서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한자와는 다른 별의별 이상한 글자로 씌여 있습니다. 그래서 겁먹고, 아.. 이거 졸라리 어렵구나..라고 지레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 덕분으로 좋은 사전들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글자 검색하는 방법만 배우면 생각보다 쉽게 접근이 가능합니다.  


2.춘추전국-후한 시대 한문 : 《좌전》,《논어》,《맹자》,《사기》,《한서》,《후한서》등등 (3.5점)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한문은 이 시대의 문체입니다. 한국에서는 한문을 공부할 때 《논어》,《맹자》부터 읽지만, 중국에서는 《좌전》부터 읽는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논어》,《맹자》보다는 《좌전》이 한문 교과서로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좌전》은 한문 문법을 정확히 쓰지만, 《논어》,《맹자》는 일종의 대화록이기 때문에 구어체 특유의 문법 파괴 현상이 간간히 발견됩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한나라 시대의 사료인 《사기》등의 책으로 한문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사료부터 한문 문법 파괴 현상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까닭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춘추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지식의 전승은 비교적 소수의 인원이 싸부님이 적확한 표현으로 남긴 말을 달달 외우는 것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법의 일탈이 아주 드물게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군주들이 행정조직을 통해 인민들을 통치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관리의 수요가 늘어났으며, 군주들은 기존의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싸움에 능한 성인 남자들에게 속성으로 글을 가르쳐 관리로 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글쓰기 훈련이 예전만 못하게 되었으므로, 문법도 가능한 간단한 것을 사용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비록 공문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 썼지만, 《좌전》에 쓰인 한문 문법과 비교하면 훨씬 간단한 문체를 사용했습니다. 예컨대 어조사 같이 반드시 없어도 해석이 되는 단어는 배제하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문서 격식을 참고해야 하기 때문에 엉터리로 한문을 작문하는 경우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공문서의 형태가 아닌 글을 쓸 경우 엉터리 문법으로 쓴 한문, 예컨대 주술 호응이 안 되는 문장을 보면 두통이 일어납니다.  


3.고전 시가와 위진남북조 시대 사륙변려체 (4.5점)


고전 시가와 위진남북조 시대 사륙변려체의 독해가 어려운 까닭은 전적으로 전고典故, 즉, 옛 문헌을 근거로 드립을 괴랄한 형식으로 겁나게 많이 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옛 중국의 문헌에서 선인들의 말씀을 가지고 개드립을 치지 않은 글을 찾기는 어렵습니다만, 개드립을 칠 때는 이게 무슨 뜻인지 추측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을 주는 편입니다. 그런데 고전 시가와 사륙변려체는 글자 수와 압운, 운율을 모두 고려하는 문체이기 때문에, 이상한 드립이 뜬금없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꽤 많습니다. 그래서 그 드립의 연원을 이해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이 사전을 검색해야 하며,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고문자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4.당송명청 시대의 한문들 (3.0점)  


당나라 때 이후부터 사료들 가운데 국가가 직접 편찬한 것들이나 학문 수준이 높은 학자들의 글은 해석하기 쉽습니다. 한문 공부하는 초학자에게 주희의 《사서집주》를 권하는 까닭도, 그만큼 간결하고 쉬운 문체로 유가 경전을 해석한 작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처음에 주희의 주석을 읽을 때는 이게 무슨 외계어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상해 복단대에서 3년을 석사를 공부하면서, 어느새 주희의 주석과 같은 문체를 시나브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까닭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제 현대 중국어 실력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당나라 말기부터 현대 백화문의 맹아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고 하며, 확실히 송대의 한문은 현대 중국어와 유사한 부분이 꽤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대로 가면 갈 수록 현대 중국어의 냄새가 짙어집니다. 따라서 당나라 말기 이후의 사료 독해 능력을 짧은 시간 내에 기르기 위해서는 오히려 한문의 기본인 《좌전》을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HSK 6급을 따고, 김용의 무협지를 원문으로 읽은 뒤, 나관중의 《삼국지》 원문을 읽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문에서 현대 중국어로 변화해 온 과정을 역추적해서 공부하는 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조선시대의 한문(3.5점) 


가끔 조선시대의 한문을 읽어보면, 확실히 명청대의 사료에 비해 어딘가 어색한 부분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한문은 어디까지나 “외국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영어 글쓰기를 빡세게 배워도, 원어민들의 표현 방법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송명청 시대의 사료에 비해 한나라 이전 사료들의 문체에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한문의 모범 예문은 동시대의 중국인들이 쓰는 한문이 아니라, 사서삼경이라는 훨씬 오래 전의 작품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6.원나라희곡 (5.0점)
 


일전에 어떤 서울대 교수님의 의뢰로 원나라 시기 지도에 관한 논문을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그 논문에 원나라 희곡이 몇 편 실려 있었는데…… 정말이지 사전에도 없는 단어가 지뢰처럼 깔려있습니다. 아마 당시 몽골어를 한문의 시어로 변환시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록 몽골이나 원나라 역사는 듣기만 해도 가슴을 웅장하게 하는 그런 시대인 것은 맞는데, 이 시대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한문과 중국어 뿐만이 아니라, 몽골어, 러시아어, 페르시아 어 등등 언어의 굇수가 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당시의 한문마저 괴랄하고 조악한 표현들이 폭격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7.청말민초의 신문체(3.5점) 


지금 번역하고 있는 여사면의 《진한사》가 신문체로 쓰인 작품입니다. 예전 한문의 문체보다 훨씬 평이하고, 보다 자유분방하며, 외국어의 문법도 받아들인 그런 문체라고 합니다. 한국어로 치면 개화기때의 국한문혼용체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외국인인 저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주희의 《사서장구》가 더 쉽게 느껴집니다. 신문체로 작성된 글을 읽으면 뭔 소리 하는 줄은 알겠는데, 이걸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골이 빠개지는 경험을 종종하게 됩니다.  어쩌면 한문에서 현대 중국어로 문체가 완전히 탈바꿈하는 과도기라서 문법의 혼란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8.현대 중국어 필사본 (5.0점) 


저는 제 중국인 와이프가 손으로 쓴 글을 읽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어에도 비공식적인 필기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뭐, 한문으로 치면 초서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당안관에 들락날락 하셔야 하는 중국 근현대사 연구자 분들께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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