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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Jul 20. 2018

워마드의 출현과 전근대 남성 우월 사상 출현의 배경

    어쩌면 워마드의 출현은 혁명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간 폭력으로 점철된 야만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자신의 자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폭력의 양상이 예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근대적 국가 체제가 제대로 동하는 곳에서는 사적으로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국가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된다. 물론 국가의 통제가 가장 약해진 밤이 되면 허약한 신체를 가진 이들, 특히 여성들이 습격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달 덕분에 이제는 굳이 강건한 신체가 없어도 총 한 자루면 여성도 상대방을 죽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다른 삶의 공간인 인터넷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폭력의 사용 능력에 있어서 성별의 차이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즉,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성의 지위가 상승했다고 본다. 또한 전근대적 사회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에 이에 기초를 둔 남성 우월주의가 복날 개처럼 뚜드려 맞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성 우월주의는 어떤 전근대적 사회 질서에 기반을 두었던 것일까.


    땅따먹기 전략 게임으로 유명한 유로파 유니버설리스4를 해본 사람들을 알겠지만, 적국에게 무작정 계속 전   쟁을 걸거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병력 소모가 생산력을 초과해서 백기를 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전근대 사회의 군대에서 활약하는 전투 인원은 오직 남자로만 채워졌다. 따라서 전란의 시대에서는 남자의 숫자가 여자보다 부족하기 십상이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러시아가 여초 국가로 돌변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이 천 년 전 중국의 전국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전쟁 포로를 너그럽게 살려두지만, 그 때는 자주 학살을 벌였다. 예컨대 진나라 장수 백기는 장평대전에서 조나라에게 승리한 뒤 40만 대군을 학살하였고, 초나라 항우는 장안으로 진격하면서 항복한 20만 명의 진나라 군을 불시에 습격하여 죽여버렸다. 그 후 조나라는 더이상 진나라를 상대할 수 없었고, 진나라의 영토와 인구를 계승한 한나라도 한 세대 동안 아무 일도 벌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는 지금처럼 식량이 풍부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소모된 인력을 보충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전쟁이 빈발하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가치가 높았을 것이다. 비단 전쟁에 필요한 자원일 뿐만 아니라, 그 숫자도 늘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근대 중국의 몇몇 지방에서 자행된 여아 살해 풍습도 이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식량이 태부족한 동란의 시대 비 전투 인원인 여아는 당장 출산 능력도 없기 때문에 짐덩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또한 고대 중국에서 관료제는 군사 제도에서 잉태되었기 때문에, 사회 고위층 역시 싸움을 전문으로 하는 남성들의 몫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오늘날 기술의 발달은 국가가 요구하는 폭력 수행 능력에 있어서 남녀 구분이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다. 여성도 군대에서 단추 하나만 잘 누르면 수십, 수백명을 죽일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몇몇 분쟁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 나라들은 전쟁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박세리, 김연아등의 출현 등이 보여주듯이 남녀 간의 실력 구분은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군대는 남자의 몫이라고 단언한다.하지만 지금까지 역사는 비상시 폭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남성이 여성을 지배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물론 인류의 역사가 비폭력적으로 진보한다면, 아니 여전히 역지사지를 못하는 야만적인 사회로 남아있을지라도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폭력만큼은 근절된다면, 워마드의 등장처럼, 비도덕적인 측면에서라도, 남녀평등이 이루어지는 계기는 여기저기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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