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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Sep 05. 2018

남성이 남아도는 시대의 유산: 징병제와 병역특례

야구 국대 선발과 병역특례 폐지에 관한 단상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축구 국대는 금의환향을 했지만, 같은 금메달을 땄어도 야구 국대는 쓸쓸하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심지어 약간의 야구 팬들은 차라리 은메달을 바랐었다고 성토했다. 한국 스포츠의 양대 산맥인 축구와 야구 국대에 대한 이런 상반된 온도 차이는 야구 국대 선발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야구 국대 선동렬 감독이 백업 요원은 멀티가 되어야 한다고 공언했지만, 내야 백업으로는 정작 유격수만 볼 수 있는 LG 트윈스의 오지환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아시안 게임에 야구 강국인 일본과 대만이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국대를 보내기 때문에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 야구 국대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일은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군복무를 마치지 않은 야구 선수에게 국대는 천금과도 같은 기회이며, KBO 역시 군복무 여부에 민감한 우리나라 정서를 고려해서 공정하게 국대를 선발해야 한다. 그런데 오지환 선수의 국대 선발은 모든 야구팬들에게, 일부 LG 트윈스 팬을 제외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았다.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일보는 국방부가 모든 병역특례제를 4년 내 폐지한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출생률의 급격한 저하로 인한 인구 절벽에 대비해 군 병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목적이라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오지환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권 일부에서는 병역특례제를 폐지하기 보다는 이를 개선해야하며, 오히려 방탄소년단 처럼 한국을 세계에 알린 문화예술인들도 병역을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나섰다. 


한국에서 병역 면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까닭은 이것이 의무를 빙자한 형벌에 가까운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히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가 젊은 남성들을 거의 아무 보상도 없이 2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부려먹는 이 징병제라는 제도가 제대로 운영된 적은 별로 없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도 겉보기에는 징병제지만 사실상 모병제를 운영하였다. 휘하의 병사들이 군공을 세우면 작위를 사여하였는데, 이는 형벌이나 요역 면제 그리고 토지 지급 기준이 되었다. 물론 탈영병에게는 엄한 처벌을 내렸지만, 항우에게서 도망해 유방에게 귀순한 한신의 일화가 보여주듯이, 당시 백성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도망할 수 있었다. 전통시대 중국에서는 권력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린 백성들을 찾아내려고 기를 썼지만, 모든 인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계속된 전쟁으로 남성의 숫자가 여성의 절반에 이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는 통일 전쟁의 상처가 아직 남은 한문제와 무제 사이의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송백한간松柏漢簡》에 기록된 당시 호구 통계에 나타나있다. 그렇다면 툭하면 전쟁이 발발했었던 전국시대에는병사로 부릴 수 있는 남성의 숫자가 여성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따라서 진시황도 병력 유지를 위해서 남성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오늘날 한국에서는 입대하는 장병들에게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력이 남아돌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가난했던 지난 시대에는 해외여행 금지와 애국심 고취가 한국 남성들을 한반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았지만, 이제는 한국이 세계에서 그럭저럭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 여기저기로 쏘다닐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병역을 짊어지지 않기 위해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로 귀화하려는 생각을 품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원정출산을 통해 미국 시민권을 구매할 수 있는 부유한 일부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또한 기술의 발달 덕분에 전통시대처럼 산이나 섬 속에 숨어서 살 생각도 할 수 없다. 전통 시대 중국사만 가지고 말하자면 이렇게 남성 인력이 남아도는 시대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징병제는 오늘날이 황금시대이기 때문에 운영될 수 있는 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운다고,  출생률 저하로 인구 절벽이 도래하자, 징병제를 통해 군 병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국시대 각국의 군주들과 진시황, 그리고 수많은 전통시대 중국의 위정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늘 미간을 찌뿌렸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진나라는 보급, 수송등 군대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업무지만,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직군들은 여성으로 채웠다. 또한 동방 제후국 출신의 인재들을 장군이나 고급 장교로 발탁하고, 사천 등지의 오랑캐들을 회유하여 군단에 편입시켰다. 오늘날로 치면 여성 징병제를 추진하고, 제주도로 온 난민들에게 입대하면 한국 시민권을 발급하는 등의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런데 과연 작금의 한국에서 이런 정책을 시도할 수 있을까? 여성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정치가들과,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외국인을 혐오하는 일반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사실 후자의 방안은 로마 말기 게르만 용병의 반란이나 당나라 때 안사의 난이 연상되기 때문에 시행하기에는 꺼림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과학 기술의 혁명이 일어나 로봇이나 클론이 병역의 의무를 대신하지 않는 이상 저 두 가지의 대안말고는 다른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약간의 이상주의자들은 군대란 국가가 개인을 억압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아예 없애는 편이 낫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람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하지 않는 한 다툼과, 분쟁, 그리고 전쟁은 계속될 것이며, 따라서 군대는 앞으로도 필수불가결한 제도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군대를 지탱할 인력은 자꾸 줄어가고, 군대란 개인에게 있어서 개똥 만도 못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하는 한국 남성이 증가할 수록, 병역의 의무를 둘러싼 사회 문제는 더욱 첨예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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